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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Nov 02. 2023

구속된 삶

당구장에서 ~ 46

차도의 요지마다 불법현수막이 눈 아플 정도로 내걸린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아웅다웅하는 걸 보니 정치시즌이 다가오나 보다. 때가 되면 나타나 귀 아플 정도로 사람들을 홀려 놓고 사라지는 위정자들. 이를 두고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하면 불법이요, 네가 하면 합법이 되는 그들만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특권은 당선된 후부터 더더욱 활개 치게 된다. 근엄한 옷을 차려입고 사진 찍기 바쁜 그들만의 일상을 잠시 훔쳐보다 말아버린다.


Tv도 들을 비추고 있다. 국정감사가 한창이지만 언제나 똑같은 스토리다. 서로 떠들면서도 카메라를 의식하는 눈치가 역 역하다. 표 먹는 인간들답게 돌출난 행동이 눈에 띈다면 그들의 작전은 성공한 거다. 민주주의는 미세한 탑을 쌓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눈 부릅뜨고 조금이라도 덜 나쁜 사람을 뽑아주라지만 이제 그 임무조차도 넌 저리 날 정도다. 노사모 때부터 속은 세월만 수십 년, 밤새도록 술 마시고 일빠로 투표하던 그날의 순수함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밥 먹는 사람들은 아니라며 다시 힘내자고 한다. 또 속아달라지만 이제는 자신이 없다.


특출 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젯밥에만 관심 있는 자들을 올가미로 채워 끌어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고 싶을 정도다. 총 한 자루 든 모습은 누구나의 상상이지 싶다. 시공간을 장악해 버리고서 제 이익을 위해 달려가는 권력의 맛을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 잘 알면서도 선거일만 되면 나도 모르게 투표장을 향하는 내발 걸음이 초라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후회할 짓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다시 그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은 어리석은 착각의 반복. 그게 국가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구속된 삶은 당구에서도 여실히 적용되는 것 같다. 칠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조금이라도 덜 나쁜 놈을 뽑듯 덜 나쁜 주인을 찾아 나서게 된다. 내 경우가 그렇다는 말이다. 한 푼이라도 더 벌라고 도움주지만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다. 초보들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한 호객 행위와 요금제도 위에서 그저 당구대가 좋고 서비스가 그만이면 만족하게 되는 것 같다.


당구에 푹 빠진 동호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게 당구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스리쿠션 늪에 빠져버렸다면 더더욱 그렇다. 행여 결석이라도 한다면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기에 구조적 문제점을 이해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오래도록 세금 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물론 평생토록 모르고 사는 경우도 있다. 치부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당구장업의 생리. 내 주머니를 훔치려는 자의 계략을 간파하면서부터 시간에 구속된 자신을 발견해 버리고 만다. 과정에서 주인은 아니라며 처세를 발휘하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실체를 감추지는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망할 확률이 높은 당구장업. 경험자들은 누구나 고개 끄덕이지 싶다. 마치 믿었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말년에 하락하는 경우를 보는 듯하다. 백성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기 있을 때 얼른 국가를 팔아버리면 장땡이지만 멕을 못 짚거나 욕심 때문에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표 쓰는 대통령이 없듯이 말이다.


며칠 있으면 새로운 국가가 건국되고 또다시 신선한 대통령이 탄생한다. 당연히 또 하나의 기존 국가가 몰락하는 상업사회의 질서. 네 주머니를 훔쳐야 내 이자를 갚게 되는 해괴함이 당연한 자본시장의 논리. 쾌적한 당구장에서 반가운 미소로 주인이 반기고 있다. '시원한 공짜 음료 드세요.' '게임 비용 깎아 드릴게요.' 덜 나쁜 당구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당구쟁이 인생. 간간히 승리라는 달콤함을 건네주며 힘내라고 하지만 이내 공허함과 허무함으로 되돌아온다. 허전한 맘 어디서 달래보나. 도망갈 곳도 없다. 국가라는 가두리 양식장에서 마냥 허우적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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