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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구와 인간 Feb 14. 2024

스마트폰을 쥔 관중들

당구장에서 ~ 51

프로당구는 프로레슬링과 닮은 꼴이다. 짜인 각본은 없지만 함성으로 흥행을 돋우려는 모습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 매 대회마다 몇 안 되는 경기장의 응원소리가 왜 이리도 크게 들리던지. 치어걸의 요란스러움도 이젠 그러려니 생각할 정도다. 진행자와 해설자도 익살스럽게 거든다. 농담 섞인 어투가 더해지고 카메라는 현란한 응원 문구가 들어있는 화면을 수시로 비추고 있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들에 갇혀 선수들이 애써 탈출하려는 모습 속에 가끔 탈이 나기도 하는 프로당구의 현주소.  


관중 없는 경기를 누가 보러 올까. 그 예상은 예나 지금이나 적중하지만 의외로 새로운 곳에서 당구문화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쥔 관중들 때문이다. 프로당구채널의 구독자는 이만 명을 바라본다. 인기 선수가 출전하거나 결승전이 치러질 때면 그 수를 넘어서기도 한다. 언제나 딱 그만큼이지만 들리지 않는 함성은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마치 레슬링에서 아이들의 고함소리를 보는 듯하다. 난구나 하이런이 이어지는 것은 별개로 당구 이외 것들에 의해 논쟁이 펼쳐지기도 한다.


인신비하는 기본이요 경우에 따라 마녀사냥도 행해진다. 어쩔 땐 아무 말 대잔치가 벌어지기도 하고 선수들을 향한 비아냥은 꼬리 물고 와전되기도 한다. 오심이라도 발견한다면 내일처럼 나서며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장난색이 더 짙은 것도 사실이다. 당구 보러 왔는지 채팅하러 왔는지 궁금증은 잠시 잊힌 채 나 또한 채팅창을 들여다보기 바쁘다. 솔직히 당구보다 재밌을 때가 더 많다. 선수들이나 그 관계자들도 훔쳐보며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같다.


당구 중계가 끝남과 동시에 누리꾼들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다 대회가 시작되면 어디 숨었다가 나타나는지, 우르르 모여들어 채팅창을 마구마구 흔들고 있다. 특정 선수를 제외하곤 대부분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나도 칠 수 있는 포지션을 왜 마다하지 않고 보러 오는 것일까. 서로 딴지걸기 바쁘지만 속내는 당구사랑이 앞서 서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찾을 일 없다. 악플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쓴소리는 좀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6년 차 프로당구가 올해부터 새롭게 출발한다. 베트남에서 시작되는 해외투어와 기존 9개 팀에서 12개 팀까지 늘려 흥행몰이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주 긍정적이지만 살짝 우려스러운 소식도 있다. 스포츠 토토 편입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날이 오길 고대했지만 막상 다가오니 살짝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아무래도 도박과 가깝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어두운 과거의 오명을 씻어버렸는데 또다시 늪속으로 빠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토토가 활성화되면 선수들의 상금과 복지가 더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발전을 위한 많은 상상이 가능해진다.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답이 결국 자본이었다면 스포츠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미 퇴색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당구가 스포츠냐 도박이냐를 두고 언쟁하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 그 의미조차 의미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듯 하지만 *한편에서는 지키려는 고집도 앞서려 한다.


당구장 어딜 가더라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그린스포츠'와 '스포츠 토토'를 즐기는 동호인들을 접할 수 있다. 막아도 소용없는 합법적 도박이다. 노름 당구라는 모욕에서 프로당구의 출범과 함께 서바이블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된 한국의 당구문화. 잠시 반짝임을 끝으로 또다시 새로움을 알리고 있다. 관중 없는 설움은 결국 스마트폰으로 해결되는 모양새다. 불 보듯 뻔한 채팅창, 오늘도 스마트폰의 배터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배고프다고 꼬르륵! 목마르다며 꼬르륵! 꼬르륵!




*UMB(세계당구연맹)

**경륜, 경마, 경정을 통틀어 그린스포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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