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고등학생의 티도 못 벗은 대학교 1학년 새내기?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선 사회 초년생?
갓 입사한 우리 회사 막내? 아니 어쩌면 또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재수생이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 누나처럼 말입니다)
스무 살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의미 있는 나이니까요. 그렇기에 그만큼 다양한 수식어가 붙기도 하지요.
하지만 스무 살이라는 나이 앞에 붙는 수많은 수식어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는다면 역시 '처음', '기대', '꿈', '설렘' 같은 것들이 아닐까요? 지난날, 우리의 스무 살도 이러한 단어들과 함께하지 않았는지요.
4년 전, 스무 살의 나 또한 그랬습니다. 꿈과 설렘과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때의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때는 2019년 여름, 나는요 이제 막 태어난 스무 살이었습니다. 20대의 첫 봄을 막 넘겼고요.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첫울음을 터뜨리고 허파를 맑은 공기로 가득 채워 작은 두 눈을 떠 세상을 바라보듯 내게도 이 부푼 허파를, 나의 까만 눈동자를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 나의 갈망이랄까요? 스무 살, 이제 막 새로 태어난 아이 아니겠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습니다. 티 하나 없이 맑은 눈엔 설렘뿐이고 가슴은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두려울 게 없었지요.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 두려울 게 없는 젊은 스무 살의 패기란 게 사실은 현실에서의 자기실현에 대한 부재와 은연중 작용하는 비교 의식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스무 살, 주위 친구들은 대학에서 새내기 대학생으로서 설레는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데 지원한 대학에 떨어져 대학 입학을 포기한 채 집 앞 마트에서 매일을 풀타임으로 노동하던 제게는 그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으니까요. 그렇게 나 자신을 향한 씁쓸함과 무력함에서 나오는 반작용이었을지도요.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 나도 가슴 설레는 꿈을 안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으니까요.
그런 까닭이었을까요? 나는 무작정 네팔에 가고 싶었습니다. 두 다리로 히말라야를 딛고 서서 세상의 지붕 위에 군림하고 싶었습니다. 부푼 허파에는 히말라야의 거친 비바람을, 맑고 까만 눈동자엔 하얀 눈산의 반짝이는 흰 눈을 담고서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스무 살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원대한 꿈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그 당시 저는 그렇게 생각했나 봅니다)
스무 살 나의 네팔 모험기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너무나 지극히 스무 살 다운 동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