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환 Jul 27. 2023

ep.2  드디어 방글라데시, 그리고 망고 김치?

두 번째 경유지 '방글라데시'에서 만난 뜻밖의 '망고 김치'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20kg에 달하는 배낭을 메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더니 어지럽고 숨이 찼다.

나는 탑승수속을 위해 항공사 부스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어후.. 그래도 금방 찾아서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배낭을 수화물로 붙인 뒤 발권받은 항공권을 조심히 작은 배낭 -나는 옷가지 든 큰 배낭 한 개와 여권과 귀중품이 든 작은 배낭, 이렇게 총 두 개의 배낭이 있다- 앞주머니에 넣었다. 항공기 탑승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나는 서둘러 게이트로 향해야 했다.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간, 공항은 아주 조용했고 간간히 피곤한 얼굴을 한 몇몇의 탑승객들과 공항 청소부만이 한산한 공항 안을 거닐었다. '다카'행 비행기를 타는 게이트 앞도 마찬가지로 한산했다. 게이트 앞으로 지친 얼굴을 한 탑승객들이 짧은 줄을 이루고 있었는데 다들 한 손 가득 짐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방글라데시 출신의 해외노동자들로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와 같이 '다카'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그 줄에서 유일한 동아시아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지 피로로 가득한 그들의 눈빛에서 나를 향한 호기심을 느낄 수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비행기에 오른다. 공항에서와는 달리 비행기 내부는 다소 소란스러웠는데 모두들 오랜만에 가는 고향길에 잔뜩 신이 난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 -이번에도 창가자리다-에 앉아 짙은 어둠이 내린 활주로를 바라봤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 피곤함으로 가득했다. 스르륵 눈이 감기고 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의 착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울리고 나는 노곤한 얼굴로 눈을 떠 창 밖을 바라본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했을까?  지면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 있었고 그 위를 따라 난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이 참 아름다웠다.


잠시 뒤 비행기는 랜딩기어를 내리고 덜컹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글라데시의 다카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사람들이 내리며 소란스럽다.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이 방글라데시계로 보였는데 절대다수가 젊은 남성들이었다. 나는 피곤하기도 했고 굳이 급할 필요도 없었기에 자리에 조금 더 앉아있다가 사람들이 조금 빠지고 난 뒤 천천히 비행기에서 내렸다.


전반적인 공항의 분위기는 조금 어수선했다. 바닥에 온갖 잡동사니를 펼쳐 놓고 앉아 긴 수염을 매만지는 늙은 노인부터 온몸에 긴 천을 두른 중년의 부인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젊은 청년, 제복을 입고 이들을 지켜보는 공항 경찰까지. 이러한 광경은 공항이라기보다는 버스 터미널과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내가 공항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는 것은 말끔한 제복을 입고 다소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이미그레이션으로 안내하는 몇 명의 공항 관리인들이었는데 이들을 따라 공항 출입국관리소로 가니 그곳에는 이미 몇 명의 백인 무리들이 펜을 들고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대화 내용으로 짐작할 때 그들은 분명 적십자 같은 국제구호기구 소속이었을 테다)


나는 펜을 집어 들고 그들이 나눠준 서류의 빈칸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방문 목적을 묻는 칸에는 관광이라고 표시했는데 지금 이 출입국관리소 안에 있는 외국인 중 관광 목적으로 방문한 이는 나뿐인 듯했다. 서류 작성을 모두 마치니 출입리소 심사관이 서류를 살피고는 여권에 도착 비자를 쿵 찍어준다. (방글라데시는 무비자 국가는 아니지만 도착비자가 가능하다)


공항 대합실로 나선다.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대합실을 감싸고 흔들리는 형광등 아래로 제복을 입은 공항 경찰들이 서있다. 역시 공항은 90년대 버스 터미널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는데 한 가지 이질적인 것이 있었다면 제복을 입고 총을 찬 채 순찰을 도는 공항 경찰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여성 경찰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게 인상적이었다.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여성의 사회/경제적 참여도가 높다)


한국에서 미리 연락해 둔 한인 민박 사장님의 픽업 차량이 30분 뒤에 온다고 하니 나는 남는 시간 동안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공항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공항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는데 시설이 조금 노후하고 세련된 면은 없었으나 대체로 고장 나거나 하자가 있거나 불결하거나 하는 등의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궁금증에 들어가 본 화장실도 세련되진 않았지만 충분히 깨끗하고 관리가 되고 있는 듯했다.


어느 정도 호기심도 해소되고 긴장도 풀리니 그제야 극도의 피로가 몰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이곳 방글라데시에 오기까지 제대로 휴식을 취한 적이 없었다. 기껏 해봐야 비행기 안에서의 선잠 정도랄까?

머리도 멍하고 몸도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공항 바닥에 누워 자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공항 출입구 앞에 있는 적갈색의 가죽 소파 -너무나 덩그러니 위치해 있었다-에 털썩 주저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피로가 몰려온다.


다행히 조금 있으니 민박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차가 도착했으니 공항 밖으로 나오란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공항 밖으로 나섰다. 공항 정문에는 펜스가 쳐져있고 산탄총을 등에 멘 경찰들이 삼엄하게 서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항공권을 가진 사람만이 공항 안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펜스 뒤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혹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때 저기서 누군가 내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는데 민박집 사장님이셨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사장님은 내게 인사를 건네며 차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시원한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차량의 푹신한 시트에 오르니 이제는 정말 안심이 됐다. 공항에서 민박 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는데 깔끔한 아스팔트 도로가 공항에서부터 집까지 쭉 나있었다. 동네 골목에 들어서니 가방을 메고 등교를 하는 방글라데시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교복에 멋진 책가방을 맨 걸로 보아하니 근처에 있는 사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분명했다.


사장님은 천천히 차를 주차하고는 나를 깨끗하고 세련된 작은 주택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모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나이도 어린데 세계 여행을 하신다고요? 대단하네요.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머물다 가세요." 우리 어머니 뻘로 보이는 중년의 사모님은 친절하게 나를 환영하시며 내가 머물 방을 소개해주셨다.


방은 혼자 지내기에는 충분히 넓고 쾌적했는데 옷장과 화장대, 샤워실이 있는 화장실, 넓은 2인용 침대, 그리고 커튼이 쳐진 창문이 있었다. 창문 아래로는 조그마한 공터가 보였는데 나무와 초목이 잘 가꿔져 있었다. (내가 머무는 이 집은 2층에 있었다) 나는 너무나 지친 나머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에어컨은 켠 뒤 곧장 침대로 향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밀린 잠을 보충했다.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오후 1시. 대략 3시간을 잔 듯했다.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조심히 나무로 된 방문을 열었다. -끼익- 문을 열고 나오니 사장님과 사모님은 집에 안 계시고 방글라데시인 가정부 한 분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계셨다.


나를 보고 방긋 웃으시며 식탁에 앉으라고 하신다. 아마 점심을 차려주실 모양인데 너무나 허기진 나는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재빠르게 식탁에 앉았다. 이윽고 김치찌개와 밥, 몇 가지 반찬이 식탁에 차려진다. 밥과 찌개, 반찬을 하나씩 맛보다가 새콤달콤하면서 고추양념이 맛있게 밴 과일피클을 하나 집게 되는데 흰 밥에 올려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약간 매실장아찌와 비슷한 느낌인데 조금 더 달달하고 부드러운 과육의 맛이랄까?


"what's this?" 가정부님께  반찬의 이름을 물으니 웃으며 대답다. "Mango Kimchi!"

망.고.김.치! 상상도 못 한 정체랄까? 아니 망고라는 것은 짐작했으나 망고로 김치를 만드리란 것까진 어찌 알았겠는가? 심지어 망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라는 것! (나는 망고와 파파야를 가장 좋아한다)

후숙 되지 않은, 아니 어쩌면 적당히 설익은? 망고의 조금은 단단한 식감과 달달함 거기다 특유의 김치 소스까지 어우러지니 너무나 훌륭했다. 그렇게 김치찌개와 망고 김치로 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는 너무 맛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아.. 이때 레시피라도 알아 왔어야 했을까?)


밀린 잠도 자고 배까지 채웠겠다. 슬슬 다카를 조금 구경해 볼까 하고 나갈 채비를 한다.

카키색 카고 바지에다 검은색 반팔티와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까지 챙긴다. 힙색에는 약간의 현금-환전을 안한 미국 달러-과 보조 배터리를 넣고 생수 한 병까지 챙기니 외출 준비 끝!


현관에 앉아 운동화끈을 묶으며 생각한다. "과연 다카는 내게 무엇을 보여줄까?"



매거진의 이전글 ep.1 비행기 놓쳐봤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