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예정된 결말
놀란 가족들은 나를 일으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편의점은 친언니와 딸이 파트타임으로 뛰었고, 발주는 남편이 담당했다. 일은 저질러 놓고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나 자신이 한없이 바보 같고 한심했다. 나 하나 때문에 온 가족이 고생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몸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기운을 내야지, 마음먹었던 날이었다. 날 지켜보고 있었던 듯 뜬금없이 건물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부로 건물주가 바뀌었으니 부동산에 가보라는 말이었다. 아무리 건물주라도 그렇지, 아무런 언질도 없이 이래도 되는 건가. 분노도 힘이라고 했던가, 홧김에 부동산으로 뛰어갔다.
좀 전에 화까지 포함되어 숨도 쉬지 않고 열변을 토하며 얼굴이 시뻘게진 채 씩씩거리는 나를 쳐다보며 건물주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알겠으니 그만하라고, 가겟세를 올리는 부분은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결정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나는 가게를 내놓기로 마음먹었다.
빨리 집어치우고 싶은 조급함과 5년 계약 중 남은 2년을 그럭저럭 버티고 싶은 마음이 시소 타듯 왔다 갔다, 변덕이 심했다. 그러던 중, 타 편의점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덥석 손을 잡았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예전에 아저씨와 나처럼 점주만 바뀌면 문제가 없지만 타 편의점으로 바뀌어 매장 안 상품에 대한 반품은 불가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감당해야 했다. 남은 기간 동안 조금씩 물건을 정리했다.
드디어 철거하는 날, 아침 일찍부터 매장에 나갔다. 나의 마지막 출근이었고 3년 동안 정들었던 나의 요새가 허물어지는 날이었다.
쾅, 쾅, 나무로 된 카운터를 부러뜨리는 소리와 철커덕, 땡강, 매대를 해체하는 소리가 난무하며 철거는 쉽게 이루어졌다. 뭐든지 만들기는 어려워도 부시는 것은 쉬운 모양이다. 한 시간도 안되어 철거는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인부들이 떠난 텅 비고 휑한 매장을 천천히 맴돌았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스쳐갔다. 텃세 부리는 동네사람들, 여럿 진상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코로나... 힘들고 힘들었다. 그리고 많이 지쳤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 마음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고마운 사람이 더 많았다. 우리 가족은 말할 것도 없으며 힘든 나를 위해 시간도 상관없이 꾸준히 일해 주었던 아르바이트생, 늘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매니저, 매장에 나오지 못했을 때 아픈 나를 걱정해 주고 보고 싶다며 나를 찾았던 많은 손님들, 그리고 참 많이도 불러 죄송한 경찰분들.
누가 편의점 일이 제일 쉽다고 했나, 할 거 없으면 편의점이나 하나 차리지 뭐, 어느 누가 말을 했나.
작은 일에도 쉽게 넘어가지 못한 예민한 성격의 나로서는 편의점의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나와 맞지 않았을 뿐, 사업체를 2~3개씩 잘 꾸려나가는 훌륭한 점주님들도 많다. 또한 부족한 나의 능력을 인정한다. 끝까지 잘해나갔더라면 좋았겠지만 나에게는 역부족이었고 결코 편의점에 대해 나쁜 마음도 없다. 그리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편의점,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냐.
편의점을 차렸던 것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실패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편의점을 통해 인생을 많이 배웠다. 덕분에 몸도 마음도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편의점을 했던 경험도 소중한 내 인생에 한 부분이었으므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를 아껴주신 고마우신 단골손님들, 그리고 나의 요새...'
나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깊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매장을 뒤로했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나의 인생을 위해 발걸음은 힘차고 경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