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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나나 Oct 18. 2023

편의점 일이 제일 쉽다고요???

#11. 희미한 빛과 진한 어둠

편의점을 열고 일 년 반쯤 되자 매출이 오르는 것이 보였다. 전 사장님이 할 때보다 매출이 올랐다며 기뻐하는 매니저는 나의 수고를 치하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르바이트생들도 자리가 잡혀갔다. 착하고 성실한 아르바이트생들만 남았고 더 이상의 변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결같이 친절과 미소를 유지한 결과 손님들 반응도 좋았다.

"여기는 사장님이 친절해서 그런가, 아르바이트생들도 다 잘해."

칭찬의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어떠한 말들보다 눈물 나게 고마운 말이었다. 여학생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사장님, 여기 너무 좋아요. 친절하고요, 신상품도 많아요. 자주 올게요~"

학생들의 밝은 에너지는 언제든 기분을 좋게 했다. 덩달아 에너지가 팍팍 생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계는 있었다. 단골손님은 확보했지만 새로운 사람을 단골로 만들기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젊은 층보다는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 편의점은 비싸다는 어르신들의 인식을 깨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나의 타겟층은 소수의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이었다. 

"아이가 너무 예쁘네요. 몇 살이에요? 이름은 뭐예요?"

나는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아이들의 이름과 나만이 알아볼 수 있도록 특징을 덧붙여 써 놓았다. 그런 후 다음에 방문했을 때 잊지 않고 "어머나, 민석이 왔네~ 재인이 안녕? " 친한 척을 했다. 자기의 아이를 예뻐하고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주는 이에게 적개심을 가질 엄마는 아무도 없었다.

눈보다 빠른 입소문과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엄마들이 대상이었기에 신상품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한정판으로 나오는 미니 소주와 음료수 박스는 없어서 못 팔았고, SNS에서 유행하는 맥주를 일찌감치 파악해, 쌓아놓고 불티나게 팔았다. 수량의 한계만 없었더라면 아마 더 팔았을 거다. 고객은 편의점 앱을 통해 점포마다 재고 수량을 확인할 수 있어 다른 동네에서도 많이 사러 왔기 때문이다. 

매출이 오르면 점주의 기분도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착각에 빠지기 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계속 잘 될 거라는 착각.




역시 세상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수개월동안 비워져 있는 옆 상가에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 매장이 들어왔다. 하필이면 아이스크림이라니. 이건 너 죽고 나 죽자는 얘기와 같은 말이었다. 

고운 시선을 보낼 리 없는 나였다. 옆 상가를 지나칠 때마다 힘껏 째려보고 일면식 하나 없는 사장을 욕했다. 도저히 이해하려 애써도 도통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편의점 옆에 차려야 되는 거냐고요!!!

급하게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다. 당장 뛰쳐 온 매니저도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 이내 사색이 되었다.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본사에 전화를 했다. 한참을 통화에 열중하더니 파격할인을 제안했다. 아이스크림을 미끼 상품으로 던지자며. 원가에 파는 거라 아이스크림을 아무리 많이 팔아도 남는 것 없는 가격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였다. 뭐라도 해야 했다. 매장 앞에 아이스크림 가격을 크게 써 붙였다. 

하지만 손님은 매정했다. 가격을 따져보지도 않고 새로운 아이스크림 할인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칠까 쭈뼛쭈뼛 대며 아이스크림 매장으로 들어가는 단골손님들을 볼 때마다 분통이 터졌다.

아이스크림 매장이 생긴 이후 아이스크림은 단 한 개도 팔리지 않았다. 그곳은 과자도 팔고 있어 아이들도 자주 들락거렸다. 나의 노력이 물거품 되는 순간이었다. 매출이 눈에 띄게 줄었다. 우리 매장은 거의 담배 가게로 전락해 버렸다. 

편의점을 연 지 이 년 만에 모든지 할 수 있다는 나의 의지는 꺾여 버렸고 다시 일어날 힘은 생기지 않았다. 나는 지쳐갔고 서서히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괴로운데 손님들에게 웃어 보일 자신이 없었다. 아르바이트생 위주로 매장을 꾸려나가는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물게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점주님, 어떤 손님이 선물용 음료수 한 박스를 사서 점주님에게 전해달라 하셨어요."

"네? 어떤 손님이..."

"세 살짜리 예쁜 여자아이를 두었고 항상 점주님을 찾고 걱정하는 젊은 부부..."

"아... 은지네 부부."

"맞아요. 아, 아이 이름이 은지였지. 은지네 맞아요.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그동안 고마웠다면서..."

인형같이 하얗고 예쁜 은지, 선남선녀 부부의 다정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정도로 날 생각해 주었다니.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생채기로 얼룩진 쓰라린 마음에 뜨거운 눈물이 스며들어 아릿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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