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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티 Aug 02. 2023

미국 입국심사, 여자 혼자 가면 무조건 끌려갈까?

내향인의 소심한 도발 

미국 입국심사는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답게 전 세계에서 이민을 오고 싶어 하는 나라이므로 입국심사를 매우 까다롭게 진행한다. 일단 입국 먼저 해버리고 불법체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동안 나는 총 3번 세컨더리 룸에 끌려갔다. 한 번은 입국심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탓에 "돈을 얼마나 가지고 왔냐", "무엇을 가지고 왔냐" 등의 일반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전혀 생각해두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질문을 받았을 때 당황하며 답을 잘하지 못해서 끌려갔다. 다른 한 번은 귀엽게 생긴 공항 탐지견이 내 가방에 있던 바나나를 찾아내며 일이 발생했다. (아마 기내나 공항에서 먹다가 잠시 넣어뒀는데 버리는 것을 깜빡했던 것 같다) 앞선 두 상황에서는 세컨더리에 끌려갔어도 가족들과 함께 있어서 무사히 넘어갔지만, 혼자 입국을 했을 때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세컨더리룸은 2차 조사관에 의해 심층 입국심사가 진행되는 별도의 조사방이다. 큰 대기실에서 다 같이 기다렸다가 개개인별로 방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다. 경찰서에서 심문, 조사를 받는 방과 비슷한 느낌이다. 


코로나 19가 발생한 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미국에 있는 언니를 방문하기 위해 혼자 미국행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여자 혼자, 그것도 코로나 시기에 미국을 가면 무조건 세컨더리 룸에 끌려간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지만 준비만 잘하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세컨더리에 이미 끌려도 가봤겠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물론 긴장은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이전의 입국심사에 대한 악몽 같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나는 비행기에서 예상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 그리고 각종 서류들을 한 파일에 모아서 착실히 정리를 해두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한껏 긴장한 채로 줄을 섰다. 한참 줄을 서있는데 조사관 중 한 명이 다가와 내 앞에 서있던 커플에게 물었다. 


"너네 여기 무슨 목적으로 왔어?" 

커플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신혼여행 때문에 왔대. 오늘 결혼식 했대"라고 통역해 주자, 조사관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 물었다. 

"너 배에 지금 아기 있어?" (아마 원정출산을 의심해서 묻는 질문인 듯하다) 

커플은 손사래를 치며 부끄러운 듯 아직 아기는 없다고 했다. 


그러자 조사관은 간단한 축하와 함께 통역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내심 통역도 도와주고 분위기도 괜찮았으니 나 또한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사관이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가족을 방문하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조사관이 내 입국신고서에 정체 모를 알파벳 표시를 했다. 아... 나는 그것이 직감적으로 세컨더리룸에 가는 표시라는 것을 알았다. 조사관한테 물으니 머쓱해하며 맞다고 답해주었다. (한편, 앞에 있던 한국인 아주머니께서 자기는 그 표시가 없다며 본인도 싸인 좀 해달라고 했다.. 아주머니 그거 아니에요..) 아니나 다를까, 다른 1차 조사관에게서도 의심스러운 듯 여러 질문을 받았다. 내가 준비해 온 서류파일을 보여주자 오히려 왜 이렇게 착실히 준비했냐며 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세컨더리 룸에 "또" 끌려갔다. 세컨더리룸은 생각보다 더 무섭고 분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험악하다. 핸드폰을 실수로 만지기라도 하면 "Don't touch your phone!"이라며 무섭게 제재를 당하고, 다음 트랜스퍼 비행기가 있다고 아무리 울며 하소연해도 들어주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카드를 가져가 가장 빠른 시일의 값비싼 한국행 티켓을 끊어서 돌려보낸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족과 함께 왔을 때와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고, 의지할 사람조차 없어 더더욱 긴장이 되었고 손이 벌벌 떨렸다. 


얼마 후, 젊은 여자 조사관이 나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갔고 나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세컨더리에 가본 경험이 있었지만, 이 작은 방에는 처음 끌려가게 되었다. 


"여긴 왜 왔어?", "너 여기서 뭐 하려고?", "여기 아는 가족이 누가 있어?", "너 앞으로 진로나 계획은 어떻게 돼?" (알량한 자존심에 로스쿨 가서 법조인 할 거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젊은 여자 조사관은 내 핸드폰을 가져갔고, 친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심문은 한참 이어졌고, 어느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분명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조사관은 끊임없이 나를 죄인처럼 추궁했고 울컥한 나는 결국 이렇게 말해버렸다.


"근데 난 미국 살기 싫어. 나 한국에 가족, 친구도 많고 미국 살 마음 없어"


무슨 정신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일종의 소심한 반항심, 나의 작은 도발이었던 것 같다. 내향인이지만 할 말은 한다!) 나는 분명 아무 잘못도 없고, 가족을 도와주기 위해 방문했을 뿐인데 나를 죄인처럼 몰아붙이는 것이 너무 속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녀는 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서 울컥하여 주절주절 계속 나불거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조사관은 슬슬 나를 피곤해했다. 기이어 이제 그만 말하라며, 말할수록 더 의심스럽다며 나의 뚫린 입을 제지하기까지 했다. (참고로 나는 내향인이지만, 때로는 투머치토커이기도 하다) 나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피곤했는지, 아니면 내 진심이 통했는지 모르겠지만 조사관은 결국 나를 밖으로 내보내주었다. 물론, 혹시라도 내 글을 읽고 세컨더리 룸에 끌려갔을 때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은 추천하지는 않는다.


긴장이 풀리자 몸에 힘이 쫙 빠졌다. 다행히 트랜스퍼 비행기도 무사히 탈 수 있었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확실히 코로나 19 이후로 여자 혼자 미국에 입국하면 세컨더리룸에 자주 데리고 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세컨더리룸에 끌려가게 되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최대한 진솔하게 자신의 상황을 전해야 한다. 교묘하게 파고드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앞뒤가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다고 느끼면 더욱 의심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처럼 지인에게 확인전화를 하기도 한다. 간혹 한국인 조사관이 핸드폰 카톡 내용이나 SNS 내용도 확인해 본다는 소문도 있다. (제 브런치 글도 보고 계신가요..?) 그리고 비록 나는 서류를 착실히 준비해서 오히려 더 의심을 받았지만, 서류를 준비하지 않는 것보단 착실히 준비하는 편이 백번 낫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재직 증명서 등) 여성 혼자 갔을 때 지나치게 꾸미거나 메이크업을 하고 있으면 더욱 의심을 한다고 하니, 이왕이면 누가 봐도 "난 피곤한 유학생이고, 이 드넓은 미국땅엔 그냥 나의 학위를 위해 왔을 뿐이야" 혹은 "난 여행자고, 미국은 그저 스쳐가는 하나의 여행지에 불과해" 느낌이 좋은 것 같다. 


사실 이제는 아예 처음부터 세컨더리 룸에 끌려갈 것을 감안하여, 트랜스퍼 시간이 넉넉하게 비행기 티켓을 끊어두는 편이다. 한 번 세컨더리에 끌려간 기록이 있으면, 그다음에 또 끌려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또다시 세컨더리에 끌려가게 된다면, 이곳에 업데이트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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