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문학동네’에서 펴낸 조지 오웰의 <1984>를 구입했다. 이미 여러 차례 원서로도 번역서로도 읽었음에도 또 구입한 건 오롯이 표지 삽화 때문이었다.
“미래상을 그려보기를 원한다면 사람의 얼굴을 짓밟는 구둣발을 상상하면 되네. 영원히 짓밟는.”
작품 후반부에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에게 한 이 말을 매우 실감 나면서도 인상적인 삽화로 표지에 입힌 일러스트판을 도무지 외면할 수 없었다. 하여 이번 잡문본색은 오웰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1984>를 꺼내 들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작가로서 오웰의 매력은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있다고 본다. 특히 <나는 왜 쓰는가(Why I Write)>는 언제 두고 읽어도 그저 교본이라는 생각이다. 다른 작가들도 이에 대해 여러 차례 썼지만 그걸 알면서도 또 보태고 싶을 만큼 읽을 때마다 탁견이라는 생각뿐이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음의 네 가지다.
1. Sheer Egoism
글을 쓰는 행위는 누가 뭐래도 이기적이라는 게 그의 첫 번째 이유다. 어떤 글이든 글쓴이를 드러내기 마련이며 거기엔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이고 그건 그 자체로 분명한 이기심이라는 것.
2. Aesthetic Enthusiasm
글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적인 면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이자면 글은 ‘읽기’ 전에 ‘보기’ 때문이다. 일단 그렇게 보기에 좋으면 읽고 싶은 마음도 그만큼 높아지며 반대로 보기에 형편없으면 읽고 싶은 마음도 줄어드는 건 인지상정이지 싶다. 그래서 오웰은 글쓰기에서 ‘여백’도 상당히 강조한다. 문득 “작가님 책은 다 좋은데 여백이 너무 많아서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한 독자의 불만에 “여백 없이 빽빽하고 값도 저렴한 책을 원하거든 전화번호부나 보라”던 故이외수 작가의 일화가 생각난다. 그는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책을 쓴 후 “당신은 여자도 아니면서 여자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책을 썼느냐”는 지적엔 “파브르는 곤충이라서 곤충기 썼냐”라고 일갈한 적도 있었는데, 나로서는 맞갖지 않은 부분도 물론 있지만 선생 특유의 그런 어떤 재치는 높이 평가한다. 뭇 글쟁이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강점이 선생에게는 분명 있었다.
3. Historical Impulse
다시 오웰로 돌아오면 글을 쓰는 그의 세 번째 동기는 ‘역사성’과 ‘진정성’이다. "이 둘이 없는 글은 거짓보다 나쁘다"는 게 그의 견해였는데 ‘진정성’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의 글로 다룰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특히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이라는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내가 왜 별도의 글을 언급하는지 바로 수긍하실 듯.
4. Political Purpose
마지막 동기는 정치적인 목적이다. “예술은 정치와 관련이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견해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게 오웰의 주장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쉬운데 어느 한쪽이 그렇게 예민함이 높다는 건 상대적으로 다른 어떤 한쪽은 그만큼 둔감하다는 방증이라 생각한다. 그 둔감한 곳을 찾아 글로 밝히는 게 작가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라 또한 생각한다.
아울러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는 말만큼이나 진부하고 식상하면서 공허하기까지 한 말이 “나는 중립이다”는 말일 것이다. 스페인 전쟁에 직접 참전도 했던 오웰은 “이쪽도 저쪽도 모두 싫어서 중립을 택하겠다는데 전쟁에서 중립은 결코 있을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말이 좋아 중립이지 두드러진 양쪽과 다른 제3의 입장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오웰의 태도는 어떤 것을 성취하거나 쟁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믿었고 한편으로는 아픔과 고통을 겪고 나면 무언가를 이룰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1945년 3월, 아내의 사망에 따른 비통을 딛고자 무섭도록 집필에만 몰두했던 그가 몇 개월 후 완성한 작품이 바로 <1984>였고 여력을 다해 빚어낸 또 하나의 작품이 바로 <동물농장(Animal Farm)>이었다.
<동물농장>의 경우 그 영감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였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오웰은 스위프트를 칭송하는 글을 여기저기에 많이 썼고 <걸리버 여행기>는 그가 8살 때 생일선물로 받았었는데 너무나 재밌게 읽어 성인이 되었을 때도 생각날 때면 꼭 다시 찾아 읽었다고 한다. 동화나 우화처럼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그 어떤 르포보다 더욱 날카롭게 현실을 꼬집는 작품에 대한 준비를 그는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웰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의 기준은 오늘날 그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오래도록 남아 계속해서 읽히는 작품’이었다. 쉽게 말해 ‘고전’으로 인정받는 작품들인 것. 그런 면에서 그는 스위프트 못지않게 셰익스피어 또한 극찬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바로 그 이유로 톨스토이에게는 비판적이다. ‘고전이라 하면 톨스토이를 절대 뺄 수 없는데 무슨 소리지?’ 한다면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에게 비판적이어서인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오웰은 톨스토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일갈했다.
“톨스토이와 그가 셰익스피어에 대해 했던 비판들은 모두 한꺼번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라는 작품의 저자가 아니었다면.”
오웰의 묘비 앞에는 생전 그의 뜻에 따라 그의 아내 묘 앞에 심었던 장미가 심어져 있는데 수십 년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실화인지 그의 명성을 보다 높이기 위한 소위 MSG가 첨부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오늘 나 같은 이가 그랬듯 내일도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또 사서 읽는 이들이 계속해서 있을 것이라는 점일 테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 쓰였다가 유명해져 너나없이 썼던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났던 오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