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승철 Aug 09. 2023

잡문본색 6

두 교사 이야기 - 정 소령과 악취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체육 선생님은 매우 강직하고 기품 있는 분이었다. 별명은 ‘정 소령.’ 성이 정 씨였고 교사가 되기 전에는 직업 군인이었다. 예편 후 교직을 맡았을 때 그의 직급은 대위였지만 예편한 군인은 한 직급 높여 주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고 해서 그는 정 소령이 되었다. 학교에서 교련이라는 과목을 맡았다가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자 그는 체육 과목을 담당하게 되었다. 강직하고 기품이 있다고 처음에 썼는데 뿐 아니라 그는 매우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 시간. 그날따라 정 소령의 얼굴이 유독 어두웠다. 누가 봐도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고 평소에는 그가 먼저 우리들한테 다정다감하게 말도 건네고 고민 있는 학생 있으면 별도로 상담도 해주고 그랬는데 그날 그는 과묵했고 그 어떤 분위기에 우리 누구도 먼저 다가서지 않았다. 한 명만 예외였다. 그의 이름은 T. 반 아이들 모두에게 비호감을 샀던 친구였다. 툭하면 애들한테 먼저 시비 걸며 싸움으로 번진 경우도 많았고 선생님들한테도 곧잘 대들었었다. 체육 시간에 우리는 항상 활동을 하기 전 열을 맞춰 대열을 갖추고 정 소령의 말을 들은 다음에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는데 그날따라 T는 유독 몽니처럼 굴었다. 정 소령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혼자서만 딴청이었다. 정 소령은 몇 번 경고를 했지만 T는 보란 듯이 무시했고 결국 일이 벌어졌다. 화를 참지 못한 정 소령이 T에게 막말을 했다. 쌍욕을 한 것이다.      


충격이었다. 욕은커녕 단 한 번도 감정 섞인 큰 목소리를 낸 적 조차 없던 정 소령이었기 때문이다. 반 아이들 모두 속된 말로 벙쪄 있었다. 그런데 T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 친구도 그날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 소령을 향해 막말을 했다. 쌍욕까지는 아니었지만 다분히 비속어였다. 그러자 또 한 번의 쌍욕이 들렸다. 당시 우리 반 ‘짱’이었던 P였다. P가 T에게 내뱉은 욕이었으며 그는 득달같이 뛰어가 T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P는 당시에 이미 키가 190이 넘었었고 몸무게도 100 킬로가 넘었다. 단순히 체격만 큰 게 아니라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오랫동안 했어서 비현실적 몸매를 가졌었다. 그 역시 평소에는 과묵하고 큰 소리 한번 낸 적 없는 친구였는데 그날 그렇게 T에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또 한 번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P가 그렇게 T를 때려눕히자 순식간에 반 아이들 대부분이 몰려들어 T를 짓밟았다. 발길질하는 친구들 모두 T에게 심한 욕을 했다. 다시는 못 까불게 아예 불구로 만들어 버리자는 말까지 나왔다. 정 소령이 번개처럼 뛰어왔지만 이 모든 게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구령대 위에 있던 정 소령이 그렇게 빨리 우리에게 뛰어 내려왔음에도 T는 이미 심한 부상을 입었었다. 병원에 실려간 T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그 밖에도 내상과 외상 모두 심했다. 하지만 가해자였던 우리 누구도 그에게 미안해하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정 소령은 교단에 설 자격이 없다는 스스로의 이유로 사직을 하려 했지만 다른 교사들과 우리 반은 물론 다른 반 학생들까지도 거의 모두 그의 사직을 반대하며 잘못의 책임도 함께 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보였다. 그만큼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었고 우리들에게는 단순히 체육 선생님 이상인 분이었다. 부상에서 회복한 T만 조용히 전학 갔다.     


1년이 지나 고2가 됐을 때 P랑 나는 다시 같은 반이 됐다. 고3 때도 만약 또 같은 반이 되면 아예 대학도 같이 가자 하는 그런 실없는 소리 하며 서로 웃던 차에 수학 선생님을 고약한 사람을 만나 웃을 일이 별로 없어졌다. 그의 고약함은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우선 냄새였다. 그래서 별명도 ‘악취’였다. 남고였기 때문에 우리들한테서 나는 냄새도 물론 만만치 않았겠지만 특히 이 수학 선생님의 악취는 유독 특이했다. 담배 냄새와 땀 냄새와 발 냄새가 섞이면 그런 냄새일까 싶었다. 그리고 그는 거의 매번 수업 시간마다 우리들한테 막말 아니면 험한 소리를 했고 손찌검도 서슴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계속 선생을 할 수 있지 싶으면서도 어쨌든 당시엔 그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악취는 수업 때면 항상 칠판에 문제들을 적어 놓고 무작위로 학생들 몇 명을 골라 풀이를 시켰다. 문제를 제대로 풀면 그냥 자리로 돌아가면 됐고 풀지 못하면 한쪽에서 짝다리 짚고 서 있는 악취에게 가서 한 대 맞고 자리로 가면 됐다. 그러던 어느 날은 P가 걸렸는데 나처럼 수학과는 영 친하지 않았던 P는 지목을 당하자마자 악취에게 가서 문제를 못 풀겠다고 했다. 악취는 그게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었다. 시도라도 하고 와야지 무작정 그에게 다가온 것이 그로서는 일종의 반항처럼 느껴졌었던 것 같다. 평소 같으면 손바닥 한 대만 맞고 오면 되는데 그때 악취는 P의 뺨을 때렸다. 그러면서 꼴 보기 싫으니까 빨리 꺼지라는 막말을 배설했다. 그러자 P는 악취에게 방금의 말을 자신에게 사과하고 평소와 똑같이 자신도 손바닥을 때려달라고 했다. 그 말에 악취는 완전히 이성의 끈을 놔버린 것 같았다. 큰 소리로 온갖 욕설을 하며 무차별적으로 P를 폭행했다. 옆 반에서 수업 중이었던 다른 선생님이 그 소리를 들었는지 얼른 달려와 악취를 말리고 교실 밖으로 그를 데리고 나갔다. 그제야 나도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P를 부축해 주고 멋있었던 그를 칭송했다. 박수까지 쳤던 친구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P는 주로 얼굴을 맞았기 때문에 타격이 난무했던 경기를 끝낸 격투기 선수 얼굴처럼 피와 붓기로 엉망인 얼굴이었지만 그런 우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록키 모습 같았다.      

T와 P는 양상은 이렇게 달랐지만 교사에 대한 반항이라는 점에서는 같았는데 우리들의 반응도 그렇게 달랐다. 그 차이는 T와 P의 차이기도 했지만 정 소령과 악취의 차이 때문이 더 컸다. 정 소령과 악취는 우리가 고등학교 입학 전에도 정 소령과 악취였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새로 지어주었던 별명이 아니라 선배들 때도 그랬던 공통된 경험의 산물과도 같았다. 학생들은 선생의 별명을 지을 때 특별한 이유 없는 단순 발상인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그 선생의 성품이나 기품에서 착안한다. 정 소령한테 악취보다 심한 악취가 설령 났다고 해도 그는 악취가 아닌 정 소령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악취는 설령 그에게서 더 이상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해도 악취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P가 아니었어도 T는 그때 반 아이들 누군가에게서는 제지를 당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P가 아니었어도 악취는 다른 학생 누구에게서든 한 번은 반항을 겪었을 것이다.      


오래전 내 경험 이야기지만 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금도 전국 각지의 학교에서 정 소령과 악취 같은 교사들 그리고 P와 T 같은 학생들이 있을 거라 확신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또 믿는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분명 ‘선’이 있고 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선도 서로의 인격과 인격이라는 품격, 그리고 인권과 인권이라는 권리를 넘을 수 없고 또 넘어서도 안 된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악취가 P의 인격과 인권의 선을 넘은 것뿐 아니라 스스로의 인격과 인권의 선도 넘었던 행위로 본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우리가 T에게 가했던 폭력 역시 단지 정 소령의 인격과 인권을 지키려 T의 인격과 인권의 선을 넘은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인격과 인권을 짓밟았던 창피함으로, 또 미안함으로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반성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독서본색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