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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 May 15. 2017

모순적인 정진영의 Names of Beauty


진영 씨는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일단 저는 확실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하루 일과도 딱 정해놓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될 정도예요. 그래서 처음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할 때도 뭔가 확실하게 정의를 해놓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조화’였어요. 제가 오케스트라를 좋아하기도 하고, 딱 짜 놓은 하루 일과 속에서 생활하는 걸 즐기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부분들이 모여 하나가 되는 형태 속에서 빗어지는 조화로움이 바로 아름다운 게 아닐까 생각했던 거예요. 조화로운 것들을 보면 만족스럽고, 충만한 느낌이 드는 거죠. 그래서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기여하려고 바이올린을 배운 적도 있었어요. 외적인 면에서도 조화로운 얼굴이 곧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했고요.


일단은 이렇게까지 생각해보고 나서는 그냥 이대로 말씀드려도 괜찮겠지 싶었는데, 사실 약간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뭔가 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꼭 조화롭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은 종종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어떤 단체에서 유독 톡톡 튀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그런 사람 덕분에 모임에 활기가 돌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조화로움이 아름다움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얻게 됐어요.


모든 아름다움이 조화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고 인식하게 되신 거군요.


네. 그리고는 약간 혼란스러웠는데, 그건 지금껏 막연히 믿어왔던 아름다움이 무너지는 느낌 때문이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아예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일이 있었어요. 동아리 회식을 가지고 친구랑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요. 여의도 부근을 지나다 갑자기 한강에 가자고 의견을 모은 거예요. 그렇게 아무 계획 없이 한 밤중에 맥주 하나 들고 한강을 가게 된 거죠. 십분 전까지는 집에 가는 길이었다가 이제는 한강에 걸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여의나루에 도착해서 편의점에 들려 라면도 끓여먹고 맥주도 마시면서 버스킹 하시는 분들 음악도 들었어요. 한 여름밤이었고, 날씨도 정말 좋았어요. 마침 한 학기가 끝나고 모처럼 여유를 되찾은 주였거든요. 지난 학기가 제게는 꽤 지치고 피곤한 학기였는데 그 순간 모든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죠. 


늘 정해진 것들을 완수하는데 집중하는 저로서는 그런 예기치 못한 일정이 굉장히 예외적이거든요. 어쩌면 뭔가를 계획적으로 완수하는 것에 강박증 비슷하게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내가 꽤 힘에 부쳤었구나 생각했고요. 그러나 그 순간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분이었죠.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단순히 조화로운 것일 뿐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예외적이고 계획되지 않은 의외의 것들에서도 비롯되는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채로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거예요. 태국에 다녀왔는데, 이번엔 계획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먹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 찾아가서 먹고, 길을 걷다가 흥미로운 곳이 보이면 들려보고.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건 아름다움이 가진 의외성 때문이 아닐까 믿게 된 거예요.


전에는 아름다움을 조화로움이라고 생각하셨다면 다음엔 예외적이고 계획되지 않은 것이라고 느끼게 되신 거군요.


그렇죠. 의식적으로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점점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와서도 그래서 사실 어떤 대답을 드려야 할지 정리가 안 된 상태였고요. 그런데 바로 어제 다시 새로운 감상을 가지게 됐고, 어쩌면 그게 제가 아름다움에 대해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방학 동안 어떤 교육을 받으러 교육장을 선택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집에서 가까운 곳을 교육장으로 배정받았어요. 하지만 저는 교육 바로 직전에 제 학교로 교육장을 바꿨어요. 단순히 익숙한 곳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교육을 받으러 가는데 어제 하필 비가 엄청 오더라고요. 


평소에 비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가는 길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학교에 도착하고 보니까 또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뭐라 그럴까, 이 교정이 아름답다 못해 약간은 서글퍼 보이는 거예요. 한 학기 뒤에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게 문득 실감 나기도 했고요.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다시 혼란이 왔어요. 예외적이지도 즉흥적이지도 않은 이 익숙한 공간에서 다시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고 만 셈이니까요. 말하자면 아름다움을 규정짓는 순간 다시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 반복된 거예요. 저는 스스로를 확실한 사람이라고 여겨왔는데, 실은 굉장히 모순적인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떤 대답을 드려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지를 요.


진영 씨의 아름다움은 결국 진영 씨가 느끼는 것이니까. 그건 온당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네. 그러고 나서 저에 대해 생각해보니까, 제가 가진 성격 중에 남을 잘 이해한다는 특성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예요. 대립되는 두 의견이 있더라도 전 언제나 양쪽을 잘 들어보고, 그 둘을 모두 이해하는 편이거든요. 사회적인 갈등 상황에서도 그렇고 친구들끼리 사소하게 다툴 때도 그랬어요. 누군가 절대적으로 나쁜 짓을 한 게 아니라면 언제든 각자의 입장이라는 게 있는 법이고, 저는 그걸 최대한 이해하는 사람인 거죠. 제삼자의 입장에서.


저는 그것이야말로 제가 가진 아름다운 능력이라고 믿어요. 상충되는 의견을 모두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인정하는 태도요. 그렇다면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하고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의견들 역시 모두 올곧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저라는 사람도 살면서 다양한 입장과 상황에 놓이게 되잖아요. 그러나 저한테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규정지으려고 한 거죠.


그 뒤에는 좀 마음이 편해졌어요. 물론 이다음에 제가 또 다른 어떤 대상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언젠가는 지금껏 해온 생각을 아예 뒤집어엎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것도 아름다움을 대하는 하나의 분명하고 확실한 태도가 되리라고 믿어요. 그렇게 미지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가는 일도 살면서 느낄 수 있는 큰 재미 중 하나가 아닐까요. 


제가 짧은 기간 동안 이런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도 인터뷰를 결심하고 나서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을 찾겠다고 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생각지 못한 과거에 놓친 아름다움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좀 슬프지만, 지금부터라도 깨달은 게 다행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러시아에서의 생활이 생각나네요. 처음에는 러시아가 싫었어요. 늘 밤뿐이었거든요. 제가 있던 곳에서는 오후 세 시만 돼도 해가 지고 날씨도 늘 추웠어요. 하루는 엄마가 놀러 오셨는데도 뭔가 보여드릴 만한 게 없는 거예요. 날이 좋아야 도시 구경이라도 시켜드릴 텐데, 워낙 어두컴컴한 도시니 나가기도 뭐하고 죄송하기만 했죠. 그때 엄마가 저를 달래시며 하셨던 말씀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이런 것도 지금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다 괜찮다고 말씀해주셨거든요.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이 워낙 다양하고 한편으로는 모순되어 보인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제가 느끼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은 그때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유일하고도 소중한 기분이잖아요. 그냥 다 느껴보는 거죠.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그게 지금의 제가 지지하는 태도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더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푹 빠져보고도 싶어요.


네. 말씀해주신 대로, 우리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면 할수록 보다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말씀 감사드립니다. 이제 대화를 마칠 텐데, 그전에 한 가지를 더 여쭤볼게요. 지금 해주실 말씀이 진영 씨의 마지막 말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러니까 이제 한 마디의 말만을 남겨야 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요.


아무래도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르겠죠. 그 모두에게 일일이 다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냥 저라는 사람, 저라는 인격체는 모두 그분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믿어요. 저는 지금의 제 모습에 만족하고 있는데, 그건 모두 그분들의 덕분이에요.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아빠한테는 유독 표현하지 못했던 편인데, 그게 좀 아쉽네요.


오늘이라도 아버님께 말씀드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글쎄요. 부끄러운데요. 정말 마지막은 아니잖아요. (웃음)


본 매거진에 실린 모든 인터뷰는 namesofbeauty.com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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