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현 씨는 어떤 때에 아름다움을 느끼시나요?
아름다운 거야 많죠, 세상에. 그렇지만 일단은 내 마음이 평화로울 때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여자 친구랑 집에서 맥주 한잔 마시면서 음악을 들을 때라든지.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가끔 근처 공원 같은 데를 가서 낮술 하면서 돗자리 깔고 하늘을 바라보거나 사람들이 있는 풍경을 바라볼 때면 그것도 또 아름답죠.
아름다움은 그냥 문득문득 다가오는 것 같은데, 그게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갑자기 훅 하고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가까운 이야기를 하자면, 어제 이사를 했거든요. 누나, 누나 친구, 저까지 셋이서 밥을 같이 먹었는데 누나 친구가 밥을 먹다 말고 창문에서 비눗방울을 부는 거예요. 그 왜 애들 부는 거 있잖아요. 낮이었는데, 그 풍경이 괜히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그럴 때는 약간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고 주변도 고요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어쩌면 아름다움이란 안온함이나 평화로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사실 그런 걸 계속 바라 왔던 사람이거든요. 뭔가 열심히 성취하고 이룩하는 삶도 물론 대단히 가치 있는 삶인데, 굳이 선택하자면 저는 다른 답을 선택해보고 싶어요.
인생이란 게, 매 순간 특별할 수는 없지만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특별한 순간이 있는 법이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삶의 작은 재미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여자 친구를 만날 때도, 장난을 많이 치거든요. 여자 친구는 시시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웃음) 몰래 숨어있다 깜짝 등장하기도 한다든가. 그런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말하자면 삶을 이루는 건 결국 아주 작은 순간들이잖아요. 별 것 아닌 순간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맥락이랄지 세계를 구축하는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작은 순간들을 더 자세히 바라보려고 해요.
언젠가부터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매일 재밌으면 안 될까. 올지도 모르는 내일의 즐거움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게 과연 맞을까. 그러다 보니 더 놀게 되기도 하는 것 같은데. (웃음) 순간순간 내가 좀 더 즐겁고 편한 느낌이 드는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면 아름다움은 그 순간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준현 씨는 그러니까 여유로움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렇죠. 아름답다고 하면 당장 떠오르는 몇 가지 장면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런 거예요. 언젠가 공원에 갔을 땐데, 그날따라 시간도 참 천천히 흐르고 굉장히 평화로운 기분이었어요. 앞에서는 애들이 뛰어놀고. 사실 공원이라는 곳이 좀 그렇잖아요.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쉬려고 오는 거니까. 암튼 북서울 꿈의 숲에 갔는데, 분수에서 물이 많이 튀더라고요. 사람들이 그 근처에서 우산을 펴고 앉아서 물 맞으면서도 웃고 있는 걸 보는 데 참 좋았어요. 평소 같으면 충분히 불쾌할 수 있는 상황일 텐데 말이죠.
저는 그래요. 뭐 제가 돈이 없어서 여행을 많이 못 다녀 본 것도 있겠지만, 아름다움이라는 게 꼭 근사한 장소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믿거든요. 중요한 건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내가 걱정이 많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반면에 그냥 집에서 쉬고 있다 해도 내 마음이 편하고 즐거우면 TV만 봐도 그래, 이게 아름다운 삶이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무리하면서 까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희 누나 같은 경우도 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지칠 때도 많은 것 같아요. 옆에서 그런 모습을 보면 안쓰럽죠. 제 나태함을 변명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암튼 저는 그래요. 열심히 사는 것도 멋지지만 몸도 마음도 너무 소진하진 않았으면 해요.
준현 씨에게는 그렇게 여유와 평안을 유지하는 게 말하자면 아름다움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뭐 살다 보면, 어떻게 매일 즐거울 수 있겠어요. 매일 여유롭게만 살 수도 없는 법이고.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별 일이 없다면 조금 더 여유로워도 괜찮겠다는 거예요. 평소에 일을 벌이는 걸 즐기지도 않죠. 그래도 세상이 날 가만두지 않을 때는 일단 그 일에만 매달려서 해치워 버리는 편이에요. 일 같은 게 생긴다고 해도. 그런 다음 한숨 푹 자는 거죠.
뻔한 이야기지만 정말 마음의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껏 아름다움을 느꼈던 순간들을 쭉 돌아보면 다 제가 행복했을 때, 제가 이미 준비된 상태였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도 하나의 감정이나 기분이고, 사실 감정에 계급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름다움 또한 오름차순 내림차순으로 정렬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별스런 게 아니더라도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고 믿어요.
매 순간 마지막을 염두에 둘 수는 없지만 사실 삶이라는 것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더욱더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어야죠. 내일 어떻게 내 삶이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죠. 어쨌든 오늘 즐겁지 않을 이유는 없는 거잖아요.
네, 감사합니다. 이 대화도 마무리를 해야 할 텐데, 지금 남기는 말씀이 준현 씨의 말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떤 말씀을 끝내 남기고 싶으신가요?
잘 놀다 갑니다. (웃음) 천상병 시인 같기도 한데, 모르긴 몰라도 이 우주라는 게 사실 굉장히 큰 거잖아요. 그와 비교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먼지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나니 꼭 후대에 이름을 남길 필요는 없겠다 싶더군요. 이름을 남기더라도 내가 사라지면 그건 아무 의미 없는 거겠죠.
내가 만약 죽거나 다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런 말을 남기고 싶어요. 나를 개의치 말고 (웃음) 먼저 갈 테니 좀 더 많이 웃고 재밌게 살다가 와라. 한국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되도록이면 서로 힘들게 하지 말고 더 많이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진짜 아름다운 세상일 것 같아요.
본 매거진에 실린 인터뷰는 namesofbeauty.com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