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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 May 22. 2017

버스전문가 김훈배의 Names of Beauty


훈배 씨는 언제 아름다움을 느끼시나요?


아름다움은 단지 보기 좋거나 예쁘다는 차원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라고 생각해요. 요즘 우리 사회가 조금은 삭막하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저는 사람들이 눈을 맞추며 대화하고 낯선 사람들끼리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편이에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린 시절 때부터였는데요. 학창 시절에 개인적인 상황으로 환경이 썩 좋지 못했거든요. 가정적으로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따로 살게 되시는 바람에 유년기를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초등학교 다니면서는 전학을 네 번이나 다녔는데 자연히 오래 사귈 친구를 만나지 못했죠.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도 없었고요. 


게다가 성격은 내성적이라 어디 가서 말도 잘 못 꺼내는 아이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힘든 부분이 많았어요. 그런 시절들이 중학교 때까지 쭉 이어져 왔는데, 처음 입학한 중학교에서 왕따를 심하게 당했거든요. 예민한 시기에 힘든 일이 있어도 딱히 말 섞을 친구가 없었어요. 아버지께서는 새벽에 일 나가셔서 밤늦게나 들어오시고. 무엇보다 하루 종일 대화할 사람이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그 속에서 순간적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고, 이런 상황에 내가 살아서 뭘 할 수 있을까, 계속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어요. 어리고 민감한 시기였다 보니 감정적으로 많이 좌절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외로움이 가장 큰 괴로움이었죠. 초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는 사실 친구들과 노는 재미로 학교 다니는 거잖아요. 저에게는 그런 즐거움이 전혀 없었고, 늘 혼자였어요. 당시에도 저는 이미 버스에 지금보다 한창 몰두해있었던 때라 친구들과 대화할 주제를 찾기도 어려웠죠.


그런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셨던 분들이 바로 버스기사님들이셨어요. 저희 집 앞인 응봉 전철역에서 한양여대까지 순환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을 가면서 등. 하교 때마다 수시로 타고 다니기도 했었죠. 지금은 없어진 노선인데 버스 다섯 대를 열 분의 기사님들께서 운행하셨는데, 제가 버스를 타면 내릴 때 까지도 인사를 꾸준히 하고 또 자주 타기도 하니까 기사님들께서 저를 예쁘게 봐주셨나 보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버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시고는 신기해하시며 말을 걸어주셨어요. 자연스레 아버지뻘 되는 분들과 많이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제가 노선을 잘 알고 있다 보니 나중에는 길을 묻는 손님이 계시면 저 학생에게 물어보라고 저를 가리키기도 하시고. 심지어는 제가 없으면 전화를 해서 물어보셨던 적도 있으셨거든요. (웃음) 


그러니까 버스를 통해 친구가 생기신 거네요?


그렇죠.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들이 생긴 거예요. 그렇게 버스를 타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어요. 마치 기사님들이 저의 친구가 되어주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기사님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어른들께 배우는 점도 많았고 보다 성숙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기사님들의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도 있었고 좋으신 분들이 참 많으시구나 하는 것도 느꼈어요. 그냥 스쳐가는 기사님, 승객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관계가 만들어진 거예요.


현재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기사님들이 많은 편인데, 그중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기사님이 계세요. 이제는 없어진 지 7년 정도 됐는데, 당시 노선 중에 복정역을 출발하여 압구정동을 지나 여의도까지 운행하는 출퇴근 급행버스가 있었거든요. 중학교 때는 학교 끝나면 매일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145번 버스를 타고 달려가서 아는 기사님이 운행하시는 차량을 타곤 했는데 쭉 타고 여의도를 돌아 복정역 종점까지 가면 세 시간 정도 걸렸어요. 그렇게 긴 노선은 아니어도 퇴근시간에 강변북로를 타다 보니 막히는 것은 당연했었죠. 


그래서 그 버스를 타면 기사님께서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친근하게 대해주셨어요. 차고지에 같이 내리는 날엔 집 가기 전에 밥 먹고 들어가라고 회사에서 사용하는 식권을 열 장 씩 뜯어주시기도 하셨고요. 그땐 차고지에서 외부인이 밥을 먹으려면 3,000원을 냈어야 하는데 저는 그냥 회사 식권 내고 공짜로 먹은 셈이었죠.(웃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그런 기억들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또한 덕분에 버스는 저에게 단순한 교통수단을 떠나 어떤 삶의 통로랄까, 세상과 저를 연결해주는 소통창구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어요. 


버스라는 게 가끔 참 묘하다는 생각은 해요. 모르는 사람들끼리 옆에 앉아서 한 곳을 바라보고 가는 느낌은 사실 버스나 지하철 외에는 받기 힘들잖아요. 훈배 씨의 심정과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공감이 되네요. 그럼 처음 버스에 관심을 가지신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처음엔 그런 것보다는 그냥 차를 좋아했어요. 사실 어렸을 때는 꿈이 자동차 디자이너였었거든요. 자동차를 정말 좋아했어요. 다섯 살짜리가 자동차 스포일러만 보고 차종을 맞히기도 하고 그랬을 정도로요. 스케치북에 옆모습을 그리면서 나름 디자인도 해보고, 거기에 부모님께 만원을 받아서 편의점에서 판매했던 월간 자동차 잡지를 매달 구입해 자동차를 보면서 모으기도 하고 그랬었죠.


그랬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 이사로 인하여 전학을 갔는데, 학교에 가려면 왕십리에서 미아동까지 버스를 타야 했어요. 그때 처음 버스에 빠지기 시작했어요. 자동차와는 뭔가 다른 느낌인 거죠. 타고나서 자리에 앉으면 덜컹거리는 육중함이랄지, 무게감이랄지 하는 것들에 매료된 거예요. 놀이기구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그냥 버스를 타는 일 자체가 재밌었어요. 물론 그때는 그냥 타는 것을 좋아했던 것뿐이지, 버스 관련 정책이라든지 시장의 생태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죠. 


아직 어린아이였을 테니까요. (웃음) 그럼 최근에 버스를 타면서 아름다움을 느낀 적은 언제인가요?


동네에 1213번 버스가 다니는데요. 이게 면목동에서 국민대학교까지 왕복을 해요. 그 노선에 배정된 버스가 총 20대인데, 그중에서도 승객들에게 인사도 잘해주시고 친절기사로 유명하신 기사님이 한 분 계세요. 승차할 때는 물론이고 하차할 때도 큰소리로 인사를 해주시는 분인데요. 


어느 날은 새벽에 버스를 타는 데 우연히 그분이 운전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타니까 인사를 해주시더니 드링크 음료 한 병을 주시는 거예요. 항상 탈 때나 내릴 때나 인사 잘 받아줘서 고마웠는데 이제야 보답을 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면서요. 물론 저도 평소에 그분께 만큼은 인사를 더 잘했지만 그 수많은 승객들 중에 저를 기억하시고 음료 한 병을 주셨다는 것이 참 감사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게 되었어요. 최근에 교통방송에서 인터뷰할 때 부탁을 드려서 같이 촬영을 도와주신 기사님이 바로 그분이에요. 그분은 워낙 친절하셔서 최근 몇 년 동안 친절기사에 여러 번 선정되기도 하셨고 신입기사님들 수습 교관도 맡고 계시거든요.


그분을 보면 감동이랄지, 아름다움을 많이 느끼는데요. 바쁜 시간 때나 식사 시간이 겹치면 아무래도 운전을 좀 서두를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분은 막힐 때나 여유가 있을 때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운행하시는 분이세요. 식사 못하시면 힘드시지 않으시냐고 여쭤도 밥 못 먹어도 안전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신입기사님들 교육시키실 때도 보행자를 우선으로 생각하셔야 한다고 강조하시고요.


버스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버스기사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을 정도로 그분께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아름다운 버스기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도 해요.


여전히 버스 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이제는 버스를 통해서 알게 된, 저와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라도 버스를 제 삶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게 되었어요. 도움을 많이 받은 만큼 앞으로는 제가 버스를 통해 다른 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오늘 이 자리도 사실 버스 덕분에 가질 수 있게 된 거니까요. 새삼 저도 버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네요. (웃음) 앞으로도 계속 버스와 관련된 꿈이나 계획을 가지고 계신 거죠?


그럼요. 주변 분들은 교통과 공무원이 되어보는 건 어떠냐는 말씀도 하시는데, 사실 전 공무원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게 제 적성은 아닌 거 같거든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쪽 공무 체계를 약간 비판하는 입장이기도 하고, 또 조직 내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는 거라서 제가 만약 공무원이 된다고 해도 정말 뭔가 바꿔볼 수 있을지도 조금은 의문이에요.


지금 생각으로는 차라리 당사자 된 입장으로 개선책을 계속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제게 돈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금전적으로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즐겁게 할 수 있고, 그것이 인생을 살면서 즐겁게 느껴진다면 그 자체가 꿈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믿어요. 


그러나 꿈이나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실은 우리가 쉽게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요원하게도 느껴지는 게 요즘이잖아요. 훈배 씨는 꿈과 아름다움을 스스로 지켜나가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일단은 우리 사회가 스스로 좀 더 변해야 된다고 믿어요. 기성세대가 심어놓은 태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게 아니라 좀 다양성을 인정하는 거예요. 무조건 공부 잘한다고 성공하고 돈 많이 버는 사회가 아니라 각자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부모님 세대는 어려운 시기를 헤쳐오시면서 생존하기 위해 세상과 부딪혀 오셨잖아요. 당신께서 그렇게 힘드셨으니 자식만큼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마음이 드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죠. 그래서 경쟁해라, 이겨라 이런 말들을 하실 수 있는데 사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만 보다 보니 사회도 점점 삭막해지고 진정 자기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는 거죠. 당장 눈앞에 놓인 경쟁에서 일단 이겨야 하니까요. 그런 태도가 자연히 돈 많이 버는 직업이 그렇지 못한 직업보다 우월하고 가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요. 


버스기사나 다른 서비스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낮게 보는 시선도 바로 그래서 생겨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기사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모두 한 가정의 든든하고 멋진 가장이세요. 인격적으로도 훌륭하신 분들도 많고요. 물론 다른 직업도 그렇겠지만 사실 우리에게 버스가 없다면 생활이 얼마나 막막하겠어요. 이렇게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일들을 하시는 분들인데 사회가 너무 대우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저도 지금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데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곤 해요. 조건과 능력, 직업 같은 게 한 사람의 가치를 규정할 수 없고 우리는 그냥 모두가 다 똑같이 소중한 사람들이잖아요. 그걸 점점 잊어가는 것 같아요. 이 부분에서 우리가 스스로 인식을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훨씬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는 사회, 더 많은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는 사회이지 않을까 싶어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말씀 들으면서 스스로를 한번 점검해보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여쭤보면서 대화 마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마지막 말을 해야 한다면, 훈배 씨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요.


제가 사실 평범한 삶이나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잖아요. 옛날부터 방황도 심했고 이곳저곳 많이 돌아온 경우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을 텐데, 저는 사실 이 방황 속에서 나름의 답을 찾았거든요. 하고 싶은 일, 제가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인데 어찌 보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다른 분들께도 너무 목적지만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가끔은 돌아가도 괜찮다고요. 최단거리로 빨리 가는 게 언제나 능사는 아니라고 믿어요. 어떤 길이 좋은 길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옆길이라고만 생각했던 길이 실은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길일 수도 있는 거죠. 


잠시 모든 걸 덮어놓고 스스로를 위해 방황을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제 좌우명이 ‘어느 한 가지에 미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인데요. 자기가 미칠만한 게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되고, 우리가 좀 더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어요.


목적지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잠시 돌아가도 좋다, 마치 버스 같은데요.


당연히 버스죠. 인터뷰 장소를 올 때도 버스 타고 돌아온 것처럼 버스는 제 인생 자체의 답이니까요. (웃음)


본 매거진에 실린 인터뷰는 namesofbeauty.com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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