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욱 씨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요?
대화를 준비하면서 생각해봐도, 아름다움이라는 걸 말로 정의한다는 게 참 쉬운 일만은 아니더라고요. 해서 일단은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들이 가진 공통점이 뭔지를 먼저 생각을 해봤어요.
아마 앞으로도 이 생각은 조금씩 바뀔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은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운 게 아닌가 싶어요. 굳이 ‘자연’이라고 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이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그 단어가 가진 여러 의미 때문인데요.
우리는 다양한 경우를 두고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어떤 것들이 근사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나, 무엇이 인위적이지 않은 채 고유한 편안함을 느끼게 할 때도 자연스럽다는 말을 쓰죠. 제가 아름다움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들의 공통점은 적어도 무엇이 자연스러울 때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연’과 ‘자연스러움’은 다르다는 말씀이시군요.
자연스러움은 포괄적인 단어라서 많은 것들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를 딱 ‘자연’이라는 말로 한정할 수는 없다고 봐요. 자연은 말하자면 인공물의 반대말인 거니까요. 사람이 만든 것들을 자연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자연스럽다고는 이야기할 수는 있죠. 그런 느낌인 셈이에요. 제게 아름다움이라는 건.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는 억지스럽지 않거나 생경하지 않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단어죠. 보통 뭔가 과하게 꾸민 걸 자연스럽다고 말하지 않고, 저 역시 그런 데서는 아름다움을 느끼기 힘든 사람이거든요.
익숙함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개는 새로운 대상에 끌리는 경우가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끌림과 아름다움은 엄연히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지금까지 제가 학습해온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년간 보고 왔던 색의 조합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여러 재료들이 모여 익숙한 맛이 아름다운 맛이 되는 것처럼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색의 조합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테고, 음의 조화는 아름답게 들리지 않을 거 같아요.
그럼 최근에 자연스러움을 느낀, 아름다운 순간이나 대상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최근은 아니지만 제가 사실 영국의 아스날Arsenal이라는 축구팀에 오랜 팬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매주 그 축구를 봐왔는데요. 이 팀의 색깔을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아름다운 축구’ 예요. 요새는 축구도 스타플레이어 위주로 팀이 구성되는 경우가 잦은데, 이 팀은 그렇지 않아요.
한 과정 한 과정 서로 협력하면서 골을 만들어 내는 거든요. 가끔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멋진 장면이 나오곤 해요. 벵거Arsene Wenger 감독이 직접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축구도 예술이라고요. 매주 아스날의 경기를 보는 팬들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만큼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스날의 축구를 보면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화합하고 유기적인 팀워크를 발휘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특유의 아름다운 축구가 구현되는 날이면 한 선수가 유난히 튀지 않고 다 같이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움직이죠. 마치 하나의 흐름처럼 조화로워요.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이런 경험이 있었는데요. 여자 친구가 하는 일의 특성상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일상에 치이고 또 관계가 익숙해지다 보면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게 힘들어질 수도 있는데, 여자 친구는 제가 자고 있더라도 꼭 연락을 남겨줘요.
내색은 않지만 그런 작은 일들이 참 고맙고 아름답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그냥 문자 한 통일지라도요. 그런 마음,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걱정하고 떨어져 있는 순간까지 공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계라는 게 그렇잖아요. 뭔가 억지로 한다고 해서 좋은 관계가 되는 건 아니죠. 그냥 자연스럽게, 마음 가는 대로 진심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어요. 저도 사실 사람들에게 연락을 잘 하는 편은 아니긴 하지만 억지로 횟수를 늘려가는 게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곧 여자 친구와 500일인데, 이쯤 되면 대개 부담스러워하잖아요. 뭔가 큰 선물을 해야 할 것 같고 그것 때문에 그 좋은 날에 오히려 감정을 상하기도 하고요. 저희는 이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의 500일은 499일이나 501일과 같은 게 아니겠냐고요.
그간 만나온 시간들을 쭉 돌아보고 서로 감사한 마음을 다시 확인하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냐고. 억지로 무리하고 괜한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관계는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런 사소한 자연스러움이 제게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와요.
그럼 재욱 씨는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더 잘 느끼기 위해, 혹은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스스로에게 솔직한 태도를 갖는 게 정말 필요하고, 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남이 뭐라고 하든 간에 제 신념을 가지고 온전한 내가 되려고 노력해요.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를 믿고, 결과가 어찌 되든 간에 한번 달려들어 보기도 하고요.
그 결정을 한 사람이 정말 나라면, 뭐가 됐든 승복할 수 있는 마음도 생기는 거라고 믿어요. 누가 억지로 시켜서 살아가는 삶이라면 성공한다고 해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런 게 나름의 노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Names of Beauty> 인터뷰어로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어떤가요? 뭔가 기대하는 게 있나요?
인터뷰를 몇 편 진행해봤는데요. 얻어가는 게 많아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걸 정리하면서 전보다는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 들어요. 나중에는 정말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정의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물론 그럴 수 없겠지만. (웃음)
저도 그렇고 같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그런데, 아름다움에 대한 의견이라는 게 참 가변적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오늘 느낀 아름다움이 내일은 또 영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걸 보면 역시 아름다움이란 참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비유를 해보자면 우리 모두 마치 각자만의 안경을 쓴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 안경을 통해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거죠. 안경도 사람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나 도수가 달라서 각각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마다 세상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선이 워낙 다르잖아요. 아름다움은 꼭 어떤 대상에 있다기보다는 사람마다 그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판단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싶어요. 제가 경험한 만큼 제가 쓰고 있는 안경도 모양과 도수를 차츰 변할 거라고 믿거든요. 다양한 안경을 쓰고 다양한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은 거죠.
그런 면에서 이렇게 아름다움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귀 기울이는 것 자체가 제겐 좋은 경험이 돼요. 인터뷰를 진행하고 글을 쓰면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잠시나마 인터뷰이들의 안경을 빌려 쓰는 느낌이 들거든요. 이렇게 천천히 나아가다 보면 나중에는 아름다움의 윤곽 정도는 한번 잡아볼 수 있을지 않을까.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여쭤보고 싶은데요. 어쩌면 기록으로 남는 마지막 말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걸 감안하고 이야기를 해주신다면요.
힘들수록 꿈을 갖고 바라고 믿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너무 이상적인 소리기도 하죠. 현실적으로 무책임한 말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전 긍정의 힘을 믿는 편이거든요. 제가 말하는 꿈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사소한 것들, 이를테면 내일 발표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도록 꿈꾸는 거죠. 이렇게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구하고 믿으면 결국 다 잘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한번 믿어보는 거예요.
본 매거진에 실린 모든 인터뷰는 namesofbeauty.com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