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락 May 06. 2017

아름답고 싶은 최원석의 Names of Beauty


원석 씨는 아름다움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름다움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매 순간 어디든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이 도드라져 보일 때는 무언가를 새롭다고 느낄 때가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은 뭔가 새로운 걸 봤을 때 그것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 전자제품이든 미술이든 시대마다 어떤 경향이나 유행이라는 게 있잖아요. 새로운 게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따라가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흘러온 거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건 아마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기도 할 거라는 이야기죠. 


그런데 이 새로움이라는 건 사실 굉장히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반드시 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만을 새롭다고 느끼는 건 아니니까요. 이미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해 온 것을 새삼스레 새로이 느낄 수도 있고, 전혀 모르던 분야를 처음 접했을 때 오는 충격을 새로움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거니까. 요컨대 무엇을 새롭다고 느끼는 것이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인 만큼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최근에는 무엇에 아름다움을 느끼셨나요?


제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엄청 다양해요. 음악도 그렇고 그냥 우연히 지나다 본 풍경도 그렇죠. 하나를 굳이 꼽기가 어려울 정도예요. 그런 건 항상 있는 것이거든요. 주위에 아름다운 것들은 늘 있어요. 살다 보면 어떤 게 정말 새로워서, 이를테면 최신 기술을 보고 신기함이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만은 아니죠. 

지금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이 컵을 봐도 그래요. 딱 봐도 아주 오래된 컵이잖아요. 궁서체로 ‘코카콜라’라고 새겨져 있는 것만 봐도 그렇죠. 그런데 요새는 이런 게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기도 해요. 요즘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거니까. 가만 보고 있으면 여기에서도 나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죠. 이런 식으로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는 거예요.


물론 예술 작품을 접할 때 참신함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기는 해요. 예술이란 그런 거니까요. 어떻게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죠. 반면에 일상은 이미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영위하고 있는 것이라 여기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건 좀 더 어렵기 마련이죠.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예술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걸지도 몰라요. 예술을 예외적이고 특별한 순간으로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그럼 작가로서의 원석 씨는 어떠신가요. 늘 새로운 뭔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는 편이신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작품을 내놓았을 때 사람들이 그걸 아름답다고 여기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죠. 그런데 그것보다는 먼저 작업을 하는 나의 기준, 내가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제게는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아무리 좋아하는 작품이라도 제 마음에 들지 않는 걸 계속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실제로 제가 했던 작업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구도로 사진을 찍은 거였는데, 되게 많이 팔린 작품이었어요. 제 다른 작업들에 비해서도 굉장히 인기가 있는 편이었죠. 그 작업들을 보면 분명 시선을 확 잡아끄는 색다름은 있거든요. 제가 봐도 조형적으로나 구도로 보나 한 번쯤 눈길을 줄만한 장면이긴 했어요. 그걸 사간 분들도 아마 거기서 아름다움을 느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구입을 하신 거니까. 


그런데 스스로는 사실 그게 전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겐 썩 맘에 드는 작품이 아니었던 거죠. 그 작업을 하다 언젠가는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과 관객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물론 다를 수 있죠. 단지 좋은 평가를 받기만 하는 건 어쩌면 간단한 일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바에야 그런 게 무슨 소용이겠냐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작가로서는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품을 관객들도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가장 뿌듯하고 또 언제나 그런 작품을 하기를 바라죠. 횡단보도 사진을 찍을 때는, 물론 그저 새로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사실 거기에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 담겨있지는 않았어요. 


그냥 예쁜 장면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는 법이겠지만 작가의 생각은 좀 다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 사진들을 팔면서도 뿌듯한 마음이 드는 한편, 제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 단지 새로운 것만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좀 담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렇다면 원석 씨가 작품을 통해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어떤 건가요?


그건 작품을 기획할 때마다 좀 편차가 있죠. 제 경우에는 유난히 심한 편이에요. 요새는 그게 고민이기도 한데,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때그때 다르고 그걸 표현해내는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틀을 정해놓기보다는 유동적으로 형식이나 방식을 맞춰가는 게 요즘은 저한테 제일 잘 맞는 것 같아요. 물론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좀 다른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일반적으로 현대 미술의 경향을 보면, 전통적인 예술에 비해 아름다움의 영역이 줄어들면서 작가의 의도나 메시지가 부각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장에 계신 분으로서, 거기에 대해선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문제인데요. 저도 가끔은 현대 미술이 일종의 퀴즈 같다는 인식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작가가 이렇게 해놨으니까 뭘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맞춰보라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더러 있으니까. 


실은 한때는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만든 사람의 의도를 특정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거니까, 형식의 새로움이라는 측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죠. 그런데 요새는 이게 좀 왜곡이 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해요. 좀 장난 같은 작품들도 있는 것 같고. 예를 들어 여기 딱 형광등을 세워두고 뭔가 의미를 찾아보라고 해요. 굳이 지어내면 뭐라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사실 형광등은 형광등이고 변기는 변기인 거잖아요.  


그래서 최근에는 아주 옛날처럼 그냥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작품들, 풍경화 같은 게 오히려 제일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하는 쪽으로 생각을 다시 하게 됐어요. 그런 게 제일 솔직해 보이기도 하고. 물론 이런 생각도 완전한 건 아니라 나중에는 얼마든지 또 바뀔 수 있어요. 사실 이 개념미술이라고 하는 것도 이제 저는 거의 끝자락에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역사란 정반합인 거니까. 하나가 지나가면 또 다른 뭔가가 오겠죠.


결국 원석 씨가 작업을 하실 때에도 아름다움은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물론 제가 작품이 아주 새롭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그 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해온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작품이라는 건 그걸 보는 사람의 기분이나 상황에도 영향을 받는 거라서 제가 아무리 애쓴다 해도 아름다움을 강요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일단 제가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나중에는 운에 맡기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결국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어떤 식으로든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방향으로 작업을 이어나가는 게 현재로선 목표인 셈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개념미술처럼 저도 잘 알지 못할 뭔가를 내놓고 싶지는 않고, 일단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거기에 제 이야기를 보태는 방식을 더 고민해야죠. 그 수준이나 정도를 조절하는 게 최근의 과제라는 생각이에요.


관객들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저도 미술을 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사실 작품을 보면서 막연히 동경만 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스스로도 해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럼 전 그냥 한번 해보시라고 말해요. 요즘은 맘만 먹으면 다 할 수 있거든요. 일단 한 번 해보는 거예요. 보고 느끼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한번 예술을 직접 해보고, 자신만의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보면서 아름다움을 퍼뜨려봤으면 좋겠어요. 못할 게 없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 가지를 더 여쭤볼까 해요. 만약 이 대화가 원석 씨의 마지막 대화라고 한다면 어떤 말씀을 남기면서 마무리하고 싶으신가요. 삶에 있어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라고 가정하고 한마디 해주시죠.


한 마디가 떠오르는데요. '나는 이제 알 수 있다.' (웃음) 죽으면 이제 알 수 있잖아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모든 것들, 사후세계나 죽음에 대한 걸 정말 알 수 있게 되는 거니까. 뭔가 한 마디를 남겨야 한다면 그 말을 할 것 같아요. 그게 정말 궁금하거든요. 이 삶 뒤에 뭐가 있을지. 요새는 백 살까지 살 것도 없이 그냥 우주나 한번 보고 죽으면 그게 딱 좋을 것 같아요.


본 매거진에 실린 모든 인터뷰는 namesofbeauty.com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구름 위를 걷는 정다겸의 Names of Beaut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