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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Aug 24. 2023

재택근무 잘하고 싶어서 선글라스를 꺼냈습니다

만 3년이 다 됐지만 프로 재택러가 되긴 아직 부족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재택근무가 덩달아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전염병의 기세가 사그라들면서 출퇴근하는 삶으로 돌아간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재택근무를 한시적으로 경험한 지인들은, 내가 지금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다들 쉬운 말로 꿀 빠는구나 한다. 물론 이 더위에 아침저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운전대에 매달려서 시간을 소비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니 이것도 꿀이라면 꿀이다. 거기다 대고 재택근무 만만하게 보지 마라, 대꾸할 순 없지만 나 나름대로의 고충은 분명 있다. 


먼저 직장생활 권태기가 자주 찾아온다. 보통 직장인은 3개월에 한 번씩 이른바 현타가 온다고 한다. 지금 여기서 내가 무얼 하는 것인가, 이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회사가 있을 것이다, 또는 일하기 싫은 마음이 평소보다 더욱 강렬하게 솟구치는 그런 감정을 분기에 한 번 정도 겪는다는 것이다. 재택근무를 하면서는 그 주기가 더욱 짧게 느껴진다. 아마 업무와 사생활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넋 놓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생겨서 그런 걸까?


또 한 가지는 사람과 직접적인 교류가 없다는 것이다. 메신저, 협업 툴을 통해 종일 팀원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타이핑을 한다. 또 화상회의 창을 켜고 손짓 발짓 해가며 대화도 나눈다. 하지만 오늘 점심 뭐 먹으러 갈까, 커피 한 잔 사서 들어오자 이런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으니 적적함이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어떤 날은 일하는 반나절 내내 육성으로 말 한마디 내뱉지 않는 날도 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좋은 점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아싸 중에 인싸로 분류되는 나는 가끔 말상대가 없는 것이 적적하다.


그리고 이건 정말 성숙하지 못한 인간의 태도에서 나오는 문제다. 집 제일 구석진 방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다 보니 모니터 안에는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는데도 자꾸 딴짓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잠깐 누워있고 싶고 냉장고에 뭐가 있나 문을 열어보고 싶고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고 싶고, 직장인의 본분은 망각하고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을 압도적으로 많이 하는 것이다. 이건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데 자꾸만 느슨해지는 스스로를 잘 단련해야 한다. 


공정거래를 추구하는 현대인으로서 돈 받는 만큼 값어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직장생활 기조다. 이거 까딱하다가는 월급루팡 되겠는데, 싶을 때쯤 출근하지 않고도 일을 잘 해내는 프로 재택러가 되고자 몇 가지 시도해 본 일들이 있다. 효과가 있는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그냥 기행이다 싶은 것도 있었는데 저마다 모두 즐거운 시도였다. 


카페에 간다

- 재택러라면 누구나 집 근처 일하기 좋은 카페 하나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커피 컵과 마우스를 번갈아 손에 쥐어가며 일하는 내 모습에 매우 만족했다. SNS에서 보던 디지털 노마드, 그게 나인가 봐 했다. 최근에는 듀얼모니터를 사용하면서 카페 가는 수가 많이 줄었다. 


점심시간에 헬스장에 다녀온다

- 12시 땡 하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헬스장에 가서 40분 정도 운동을 하고 온다. 1시부턴 일해야 하니까 당장 씻지는 못하고, 간단한 점심 식사를 준비해 모니터 앞에 앉아서 먹으며 일한다. 운동을 하고 난 직후엔 개운하고 정신이 맑아져서 좋은데 한두 시간 지나면 일하는데 쓸 에너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할만하다.


소파에 누워 짧은 낮잠을 잔다

- 집에서 일하는 특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소파에서 짧은 낮잠을 청했다. 시에스타 그런 게 있다고 했으니까 나도 한 번 해봤다. 지금은 가장 경계하는 일이다. 한 번 바닥에 등이 닿으면 다시는 앉아서 일하지 않는 게 나라는 걸 빠르게 인정했다. 


룸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인센스 스틱을 태운다

-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태스크를 시작할 때 의식을 치르듯 룸 스프레이를 팡팡 뿌린다. 특히 교보문고 시그니처 향이 담긴 스프레이를 좋아한다. 가끔은 인센스 스틱을 태우면서 소원 빌듯 생각한다. 제발 정신 차리고 빨리 업무 끝내게 해 주세요.



선글라스를 쓰고 일한다

- 이건 정말 권태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썼던 방법이다. 가까운 지인 역시 재택근무를 하는데, 일에 집중이 안 될 땐 위아래 모두 옷을 갈아입고 새 마음으로 서재 문을 열고 들어간다고 했다.  난 가지고 있는 옷이 대부분 거기서 거기라 새로 마음을 바로잡기엔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해 낸 게 선글라스다. 모니터 앞에 앉아 콧잔등 위를 미끄러지는 선글라스를 손가락 끝으로 밀어 올리며 여행지에 나와서 일하는 것처럼 기분이라도 내보는 것이다.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시커먼 색안경을 끼고 일거리를 바라보니 좀 생경한 기분이라 좋았다. 왠지 굉장히 집중이 되는 것 같았다. 한 20분 정도는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지금도 종종 선글라스를 쓰고 일한다. 누가 보면 웃기는 모양새겠지만 아무도 볼 사람이 없으니까. 물론 화상회의를 할 땐 모니터 옆에 벗어 둔다. 


브라탑을 입고 일한다

- 최근에 즐겨하는 방법이다. 너무 더워서 능률이 떨어지는 것 같아 그랬다. 분명한 것은 그것은 속옷이 아니라 외출 시에 입어도 손색이 없는 운동복이라는 것이다. 사실 진짜 운동을 하러 갈 땐 박스티셔츠를 입고 나가는데 마침 인스타그램 광고에 홀려 사둔 검은색 브라탑이 있어서 이걸 입고 일해보았다. 무엇보다도 허리가 곧추 펴진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 튜브를 찬 듯 올록볼록 튀어나온 뱃살을 조금이라도 밀어 넣으려면 바른 자세로 앉는 수밖에. 허리를 펴고 턱 끝을 당긴 자세로 앉으면 집중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단 블라인드가 끝까지 내려와 있는 것을 매번 확인한다. 


재택근무를 더 잘하기 위해서 또 어떤 시도를 해볼 수 있을까? 집중이 안 될 때 짧은 에세이 한 편을 읽어본다. 스쿼트를 열다섯 개씩 네 세트 해본다. 냉수를 한 잔 들이켠다 기타 등등. 크고 작은 시도를 계속해하고 있다. 출퇴근하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재택근무에 나 스스로를 최적화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기행으로 여겨질 만한 것도 있을 테지만 이런 과정이 나름대로 흥미롭다. 내가 이렇게 재택근무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나 출근 안 하면서 밥벌이 오래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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