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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Aug 23. 2023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어요

주말이면 기어코 집밖으로 나가는 재택근무 4년 차 

다음 달이면 지금 직장에 입사한 지 만 3년이 된다. 아이가 돌 때쯤 되었을 때, 막연하게 1년 뒤 그러니까 아이 두 돌이 지나면 재취업을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습관처럼 채용공고 사이트를 훑어보던 중에 지금 회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홀린 듯 지원했다. 이전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포지션이고, 무엇보다 재택근무를 권장한다는 회사의 방침이 나를 흔들었다. 남편과 상의 없이 우선 입사지원서를 넣었다. 며칠 뒤 온라인으로 화상 면접을 보고, 또 며칠이 지나 사무실에 방문해 면접을 보고 그날 바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사무실로 면접을 보러 가면서 단단히 마음먹었던 한 가지는, 굳이 따지자면 돈 버는 일보단 아이를 키우는 일이 우선하기 때문에 아이 돌보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면 다른 좋은 조건이 따르더라도 입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내가 결심에 결심을 거듭한 것이 무색할 만큼 호의적이었다.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물론, 자율출퇴근제를 시행하기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스케줄을 유동적으로 관리해도 좋다는 동의를 얻었다. 그렇게 나는 재택근무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 회사에서 보장해 준 내용은 지금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고, 덕분에 나의 애사심은 하늘을 찌르는 정도이다. 


작년 여름에 찍어둔 책상 사진. 지금은 저 사진과 제법 달라진 모습이다.  듀얼 모니터를 쓰고, 벽에 붙여두었던 엽서는 모두 떼어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일상은 단조롭다. 아침에 아이를 등원 버스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면 9시가 채 안 된 시간이다. 바로 노트북을 켜고 오늘 할 일을 정리한다.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서재로 꾸며 주로 거기서 일하는데 아이는 이제 그 방을 엄마 회사라고 부른다. 커피를 한 잔 내려서 끝방 책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일을 시작한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자료를 읽고 보고서를 쓰고 기타 등등. 혼자 먹는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가능하면 식구들이 저녁에 먹을 반찬도 하나쯤 해둔다. 1시가 되면 또 책상 앞에 앉는다. 한참 일거리를 들여다보면 4시쯤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하던 일을 한 시간 반 안에 끝내야 한다. 5시 반엔 마무리 짓고 하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픽업하러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 직장생활이다. 


재택근무는 너무 좋다. 전에 출퇴근하는 직장생활을 10년 가까이했지만, 돈을 좀 더 준다고 해도 다시 출퇴근하는 삶으로는 못 돌아간다고 확신한다. 우선 출퇴근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시간은 물론이고 계절과 날씨에 따른 옷차림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품위유지비랄까, 그런 것도 불필요하다. 그날 기분에 따라 집에서 일해도 되고 카페로 나가도 된다. 와이파이만 잡히면 어디든 일할 수 있는 곳이 된다. 사무실에 매일같이 드나들다 보면 가끔은 감정적으로 껄끄러운 관계가 생길 수도 있는데 재택근무는 그럴 일이 없다. 초반엔 온라인으로 업무 이야기만 주고받는 것이 정 없다 느낀 적도 있지만, 지금은 각자 자리에서 제 몫을 다 해내는 팀원들을 보면 동료애가 솟구친다. 


정말 좋은 재택근무지만 단점을 꼽자면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다. 회사 일, 집안 살림과 육아, 휴식을 모두 집에서 하다 보니 집에 혼자 있어도 쉬는 기분을 느끼기 어려울 때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업무에 쫓길 때보다 여유가 있을 때 더욱 그런 생각을 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앉아 있다가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며 과자 부스러기가 눈에 띄고, 청소기만 돌리고 다시 앉아야지 했다가도 손걸레를 들고 책상과 책장에 쌓인 먼지를 닦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차차 지금은 회사 일 할 시간이야 생각하며 다시 자리에 앉고 이걸 얼마간 반복하다 보면 집에 가서 나자빠진 채로 푹푹 쉬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다. 집에 있으면서도 말이다.


얼마 전 내 인스타그램 계정 스크롤을 내리며 지난 사진을 보다가, 작년에 열 세 곳의 숙소를 예약해 다녀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주도 민박집을 비롯해 글램핑, 리조트, 호텔, 에어비앤비 기타 등등. 집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하루 또는 이틀밤을 자고 온 게 열세 번이었다. 다른 곳에 가서 자는 것이 아니어도 주말에 집에 붙어있었던 날이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근교에 있는 도서관, 미술관, 카페, 과학관, 수목원 할 것 없이 포털사이트에 가볼 만한 곳이라고 소개된 곳을 열심히도 쫓아다녔다. 


출퇴근하는 삶일 때는, 물론 집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 보내는 시간도 즐길 줄 알았었는데 요즘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성미가 된 것 같다. 왜 이럴까 생각해 보니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나를 집 밖으로 나가도록 떠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밖으로 나가는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평일 내내 주말에 나갈 궁리를 하게 된다. 몸은 피곤해도 낯선 풍경을 보고 군중 속에 잠시나마 섞이는 시간이 재택근무 하는 내내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게 하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재택근무를 한다. 아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마음먹은 일을 모두 마치고, 6시가 되면 다시 육아와 가사노동을 시작할 것이다. 이번주 토요일엔 미술관에 갈 생각이다. 주말에 집에 있을 수 없지, 생각하며 지난달에 미리 표를 사둔 전시가 있어서 거길 가야 한다. 일요일엔 뭘 할까. 평일 내내 비가 온다던데 주말은 화창하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뙤약볕 아래 있더라도 꼭 밖에 나가야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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