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Aug 22. 2023

오코노미야끼 방석

예쁘진 않아도 맛 좋으면 오케이

얼마 전,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비 소식을 들으면 머릿속에 부침개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김치전 말고 부추와 오징어를 듬뿍 넣고 기름에 지진 부침개가 생각난다. 다른 동네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 동네는 비 오는 날 부추를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때 가까운 마트에 가면 부추는 이미 동이 나고 없다. 근처 마트 두 어군데를 들렀는데도 부추를 못 구한 적이 여러 번이다. 때문에 비 오는 날이면 부추를 손안에 넣고 싶은 오기마저 생긴다. 그래서 일기예보에서 비 이야기를 하면 그날 바로 온라인 장바구니에 부추를 담아 주문한다. 


며칠 내리 비가 내렸는데 부침개를 못 만들어먹는 바람에 작정하고 산 부추가 냉장고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부추를 살 때 마음은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해 봐라, 당장 자작하게 반죽해서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자글자글 부쳐 먹어야지' 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 평일 저녁엔 식구들 저녁 식사를 부침개로 때우자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다. 찌개나 고기요리와 함께 밥반찬으로 내놓자니 그건 또 괜한 수고 같다. 주말 낮 나른한 시간, 식구들이 다 같이 있을 때 출출할 때쯤 한 판 지져 먹고 싶은데 그때를 놓치고 나니 냉장고 안 부추 상태가 오락가락이다.


부추를 이대로 버릴 순 없으니 혼자 먹는 점심에 부침개를 만들어먹기로 했다. 냉장고에서 부추를 꺼내다 보니 절단면이 거무튀튀하게 변색된 양배추가 눈에 들어와서 그것도 함께 꺼냈다. 매일 체중을 신경 쓰는 사람으로서 죄책감 없이 밀가루를 먹을 순 없으니, 밀가루 대신 냉동실에 있던 오트밀 가루를 사용하기로 했다. 오징어도 빠뜨릴 수 없지, 혼자 먹는 한 끼엔 오징어 다리만 떼어내도 충분하다. 부추와 양배추, 오징어를 썰어 볼에 담고 달걀을 하나 풀었다. 적당히 되직해졌다 싶을 때까지 오트밀 가루를 부어가며 뒤적여주었다. 양배추가 들어갔으니 오코노미야끼라고 불러도 좋겠다 생각하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혼자 먹는 한 끼에 커다란 프라이팬을 꺼내는 것도 사치 같다. 기름도 많이 들어가고 안 그래도 하기 싫은 설거지 거리 부피가 늘어나니 웬만하면 커다란 팬보다는 작은 크기의 직사각형 달걀말이 프라이팬을 주로 사용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에 나눠 굽기도 성가셔서 만들어둔 반죽 전부를 한 번에 팬에 부었다. 다 만들어놓고 보니 오코노미야끼 방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간장보다 식초를 더 많이 넣은 초간장을 만들어서 푹푹 찍어 먹었다. 식구들이랑 다 같이 먹는 것이었다면 밀가루를 넣어 더 쫀득하고 바삭하게 구워 냈을 텐데, 오트밀을 넣은 것은 달걀부침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한 판 부쳐 먹고 나니 든든하고 기분이 좋았다. 식구들이랑 다 같이 먹는 것이었다면 동그란 모양으로 아담하게 부쳐냈을 텐데, 혼자 먹는 거라 방석 모양으로 부쳐낸 것도 내 딴에는 마음에 들었다. 


오늘 오후부터 시작해서 사흘간 비가 내린다고 한다. 운 좋게도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에 부추가 있다. 식구들이 한자리에서 점심을 먹는 주말까지 기다릴 순 없지. 혼자 먹는 오늘 점심 메뉴는 오코노미야끼 방석이 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급여노동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