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야 전자책 보는데 재미를 붙였다. 책마저 디지털화되다니, 멋도 없고 낭만도 없는 세상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나였다. 하지만 남들 좋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 전자책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전자책이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사나 싶을 지경이다. 잠들기 직전까지 태블릿을 배 위에 올려놓고 전자책 플랫폼 앱을 켜 책을 읽다가, 잠드는 순간에는 '아... 전자책 최고...' 생각하면서 잠든다.
내가 전자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기다림 없이 원하는 책을 바로 볼 수 있다.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첫 문장을 바로 읽기 시작하면 호기심과 흥미가 증발할 틈 없이 순식간에 책에 몰입할 수 있다.
여러 권을 동시에 읽기에도 수월하다. 얼마 전에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을 읽었다. 여러 작가의 글을 모아 엮은 책이었는데, 김신회 작가의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곧바로 검색창에 작가 이름을 입력해 <아무튼, 여름>을 읽었다. <아무튼, 여름>을 다 읽고는 다시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으로 돌아가 읽었다. 전자책 플랫폼을 이용했기 때문에 아주 간편하게 두 권의 책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또 책 읽기 공백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 종이책만 고집할 때는 책 읽는데 열흘, 읽고 싶은 책을 찾는데 열흘이 걸리는 꼴이었다. 그런데 전자책 플랫폼을 이용하니 내 독서 습관을 고려해 적당한 책을 추천해 준다.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새로운 책을 끝도 없이 추천해 준다. 덕분에 나는 책 읽기 공백 없이 입맛에 맞는 책을 계속해 읽을 수 있다.
뒤늦게 전자책 좋은 걸 알고 전자책 플랫폼 중독자처럼 굴고 있지만, 여건이 될 때마다 동네 책방에 들른다. 서울에 살 땐 집에서 회사까지 오가는 동선에 대형 서점이 몇 개나 있었다. 그때는 수천 권인지 수만 권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이 진열되어 있는 공간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아마 책 읽는 느낌을 느끼는 것으로 지적 허영심을 조금이나마 채우는데 만족했던 것 같다. 지금은 서울을 벗어나 살고 있는데,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워낙 활동 반경이 좁아지기도 했고 가장 가까운 대형 서점까지는 차로 20분 이상을 가야 한다. 또 전에 비해 동네 책방이 여럿 생겨서 자연스럽게 몇 군데에 발걸음 하게 되었다. 전엔 대형 서점에서 책에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을 즐겼는데, 요즘엔 동네 책방의 아기자기하고 다정한 느낌이 좋다.
동네 책방에 가면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책방지기이다. '독서 인구가 절벽에서 고꾸라지듯 줄어드는 이 시기에, 책을 얼마나 좋아하면 책 장사를!' 하는 생각이 들며 책방지기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기 쉽다. 또 공간에 알맞게 수를 맞춰 가져다 둔 책 제목을 하나씩 살펴보면 '여기가 내 집이면 좋겠다'는 부러움 마저 든다. 나는 동네 책방에 가면 꼭 책을 한 권씩 산다. 전자책 연간구독권에 지불하는 비용, 집 책장에 진열된 묵은 책을 생각하면 '합리적인 소비인가?' 의심스럽지만, 스스로에게 선물하듯 또는 지적 허영을 채우는 의식처럼 종이책 한 권을 사고 싶은 마음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서점과 제로웨이스트샵을 겸하고 있는 동네 책방에 갈 계획이다. 2주 전에 처음 다녀온 곳인데, 마침 또 갈 일이 생겨 기쁘다. 이번에 가서는 김신회 작가의 책을 한 권 사고 귀퉁이에 서서 읽으며 책방 냄새를 온몸에 듬뿍 담아 오고 싶다. 책을 읽는 즐거움과 책방에 가는 즐거움은 다르다. 다르지만 모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