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내 꿈도 아닌데 돈은 계속 벌어야 하네요?
올해로 급여노동 13년 차다. 물론 중간에 가벼운 번아웃으로 한 달 안팎, 출산과 육아로 길게는 1년가량 쉰 적도 있지만 대학교 졸업 후 현재까지의 햇수를 세어보면 그렇다. 적어도 회사로부터 120회 이상 월급을 입금받았다고 생각하니 내가 가진 재주에 비해 참 애썼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4만 개의 직업이 있고, 한 사람이 평생 동안 7개의 직업을 거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따져보니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 범주 안에서 세 개의 직업을 가져봤고,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는 나의 다섯 번째 회사다.
대학 졸업 직후에는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는 일, 회사의 규모, 월급은 달라도 낯선 조직에 들어가서 주어진 역할을 해내는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참 바빴다. 일하느라 바빴다기보단 일하는 나 자신에 심취해 바쁜 시늉을 잘도 했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 없이는 이 회사가 도무지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갖은 허세를 다 부렸는데, 한 자리에 모인 친구들 모두가 경쟁하듯 그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민망한 줄도 몰랐다. 지금 20대 초중반의 신입사원이 그런 얘길 내 옆에서 한다면 너무 귀여울 것 같다.
서른 살을 앞둔 즈음부터 밥벌이하는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퇴사하고 자영업자가 된 친구가 여럿이었다. 한 친구는 귀여운 것이 최고라며 소품샵을 열었다. 또 다른 친구는 환경오염 문제가 시급하다며 업사이클링 제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했다. 대학시절부터 자취방에서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던 친구는 고양이 호텔 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직업을 한 번 바꿨지만 회사에 계속 속해 있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정말 멋져 보였다. 사업이라니, 열심히 해서 크게 키우면 모두 내 것이 되는 내 사업이라니. 또 당시에 워라밸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나갈 때였는데 자영업이야말로 워라밸을 사수하는 최전방에 있는 것 같았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말이다. 친구들은 적당한 동기가 있어서 회사를 박차고 나갔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동기가 없었다. 출퇴근, 야근을 반복하는 틀에 박힌 일상이 지겨워서 딴짓을 하고 싶은 것일 뿐 마땅히 해보고 싶은 사업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큰돈은 못 벌지만 적어도 적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직장인의 삶에 큰 불만이 없었다.
서른보다 마흔에 가까운 30대인 지금은 서른 살 안팎일 때와 또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소품샵을 창업했던 친구는 업종을 바꿔 또 다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업사이클링 제품을 팔던 친구는 다시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갔다. 고양이 호텔 사업을 하던 친구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편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친구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스스로 원해서 전업주부가 된 친구도 있지만 육아를 도맡아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관둔 친구도 있다. 필라테스 자격증을 따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는 큰돈은 못 벌어도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으니 좋다고 한다. 식당을 개업해 쉬는 날도 없이 일주일 내내 일하는 친구도 있는데, 늘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한 달에 천만 원 넘게 버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 세대를 생각해 보면 내 나이 무렵엔 다들 전업주부로 살았던 것 같은데 아무리 따져보아도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물론 가계 경제 형편상 두 사람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실정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또 버는 돈 없이 쓰기만 하는 것은 마음 불편해하는 성격이다. 로또에 당첨되면 돈 버는 일을 관둘 수 있을까?
한 때 직장생활을 같이한 전우 같은 친구가 있다. 정말 그 직장에서는 별별 일을 넌덜머리 나게 한 탓에 우리끼리 아주 돈독해졌다. 그 친구는 자영업자로 산 지 5년쯤 되었다. 마음이 잘 맞는 사이인데 얼마 전에 카카오톡으로 안무를 묻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부자가 꿈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계속 돈을 벌어야 하는 거야?
안 벌면 쓸 돈이 없어서.
우리가 사치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 끽해야 중고서점에서 책 세 권 사면 행복한 게 나야.
그러게. 꿈이 부자였으면 아주 큰일 날 뻔했어. 과로사했을 거야.
지금도 자영업자가 될 용기는 나지 않는다. 해보고 싶은 것도 없고, 어떤 게 돈이 될만한 사업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부쩍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해 본다. 돈벌이도 중요하지만 집안 살림을 하는 것도, 주양육자로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나의 역할이다 보니 모든 일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돈벌이는 계속하고 싶다.
한 직장에서 20년, 30년 근속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직 한 번 하지 않고 급여 노동을 할 수 있는 걸까. 우러러보는 마음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정말 궁금하다. 나의 미래가. 나는 급여 노동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