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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즘 Jul 02. 2024

국문과 나와서 칼럼니스트 합니다

  나의 최종 학력은 모 지방거점국립대 국어국문학과 학사 졸업이다. 칼럼니스트가 되고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가끔 내가 국문과를 나왔다는 사실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역시 전공자니까 글을 잘 쓴다더라 식의 말들을 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나는 초중고 12년을 다니면서 괄목할 만한 글쓰기 상을 받은 바 없다. 초등학생 때 논설문으로 동상인가 했던 것 말곤! 백일장도 한 번도 다닌 적 없다. 나는 문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그렇게 여기며 세월을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대학은 조금 다르긴 했다. 어디까지나 조금이다. 국문과의 시험은 문제는 한 문장, 답은 커다란 답안지로 한 바닥이어야 한다. 그걸 제 시간 안에 써내야 했다. 기계적으로 글을 쓰는 훈련 끝에 4.22의 빛나는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콤플렉스에 여전히 빠져있던 나는 얼마 안 되는 창작수업이란 수업은 다 피해갔고, 끝내 나의 창작욕을 불사를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 후 정신장애 발병을 거치며 나는 집 안에서 은둔생활, 공시 낭인 생활을 해갔고, 글쓰기는 나와 관련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계기로 인권단체를 만들고, 그 인권단체를 홍보할 칼럼을 쓰다가 주류 장애인 언론사의 눈에 들게 되고, 그러다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정신장애계에서 얼마 안 되는 칼럼니스트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가 글을 빨리, 그리고 쉽게 쓰는 것 같다며, 역시 국문과라서 그렇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국문과 나와서 칼럼니스트 한다는 건 사실 당연하지 않다. 국문과는 창작을 가르치는 학과도 아니고, 칼럼 집필은 더군다나 우리 학교에서 본 적도 없다. 오히려 신문방송학과에서는 있었을까.


  국문과라서 글 잘 쓴다는 게 유효한 건 국문과에서 죽음의 논술시험을 연달아 보면서 필사의 훈련이 되었기 때문이지, 국문과를 나왔기 때문에 당연스럽게 되는 게 아니다. 칼럼 쓰기에는 오히려 필자의 인생 궤적이 경험 전문가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녹아나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유할 만한 이야기를 최근에 찾았다. 나는 어릴 적 그림을 취미로 즐겨 하고 잘 그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대학입시에 뛰어들게 되고, 가정 형편도 좋지 않아 그림을 그만두었고, 나는 내가 그림을 못 그리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던 나는 5월에 정신병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미술요법 시간에 명화 세 가지를 합쳐 자기 자신을 상징화한 '고독한 토끼의 점심식사'를 그렸더니 잘 그렸다는 말을 연달아 들은 것이 아닌가? 나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 후 나는 학생간호사 선생님의 얼굴을 그려서 선물할 정도로 그림 실력이 늘게 되었다.


  나는 국문과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문학에는 소질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글쓰기에 자신이 있지도 않았다. 글을 써서 용돈을 벌자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신장애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언어로 정리한 후에서야 내가 글쓰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더라면 글쓰기 재능도, 그림 재능도 나에게 있는 줄 어떻게 알았으랴!


  국문과를 다니고 졸업한다는 건 단지 국문과에서 글쓰기 과제 트레이닝을 거쳤다는 것을 의미할 뿐, 작가로서의 자양분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칼럼니스트로서,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은 대학 졸업장이 아니라 나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경험이다. 글쓰기 트레이닝은 그 과정을 쉽고 빠르고 윤택하게 만들어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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