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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즘 Jul 21. 2023

‘자폐적 경험’이란 무엇인가? 뒷이야기

이 시리즈는 제가 에이블뉴스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의 뒷이야기를 쓰는 곳입니다. 이 글을 보기 전에 에이블뉴스의 '자폐적 경험’이란 무엇인가?' 칼럼을 읽고 오시면 글을 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반가운 손님이 '회복의 공간 난다'를 찾아왔다. 그분은 김경화 선생님이었다. 번역 신간을 출간했다며 나에게 선물로 내미신 것은 '자폐 스펙트럼과 하이퍼월드' 책이었다. 서평을 써주길 바란다는 말씀과 함께. 이것이 나를 두 달 동안 쩔쩔매게 한 숙제가 될 줄은 몰랐다.


‘자폐적 경험’이란 무엇인가? 뒷이야기


  이전에도 에이블뉴스에서 서평을 쓴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쉽게 쓸 수 있을 줄 알고 가벼운 마음에 수락했다.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용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물리적으로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엔잡러다. 칼럼니스트는 사실 본업이 아니고, 정신장애 관련 연구소에서 당사자 대상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나의 본업이다. 여러 사무실을 오가며 외근을 해야 했고, 행정과 회계 업무가 만만치 않았다. 책을 한 페이지 읽는 것조차 하지 못한 나날들이 많았다. 만약 김경화 선생님께서 이 글을 본다면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


  책을 선물 받은 지 한 달이 지나갈 무렵,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 자리에서 열심히 책을 읽었다. 한번 속도가 붙으니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서평을 시작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일단 서평의 얼개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책의 콘텐츠가 상당히 많기도 했고, 모두가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하나하나 다 쓰면 올해 안에 서평을 마무리지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독자가 피로할 것 같았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정리해야 했다.


  나는 네 편의 시리즈를 쓰기로 했다. 오프닝 칼럼, 감각 이야기, 이중공감문제, 한계 및 마무리 칼럼으로 구성을 짰다. 


  다음으로 넘어야 할 산은 오프닝 칼럼이었다. 그 무렵 나의 머릿속에 안개가 피어올랐다. 브레인 포그(뇌 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가 찾아왔다. 몽롱한 기분으로 오프닝 칼럼을 썼다. '하이포(hypo)와 하이퍼(hyper)의 교차점을 넘어'라는 거창한 제목을 지었지만, 글에 힘이 없었다.


  다음 칼럼을 쓸 시간이 없었고, 어떻게 써야 할지 끙끙 앓다가 한 달이 또 지났다. 이제는 정말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글을 쓰기로 했다. 책을 읽으면서 감명 깊었던 부분을 찍은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마침 '자폐증적 경험'이라는 말이 들어왔다. 감각에 대한 이야기였다.


  경험에 초점을 맞추니 내가 자폐인으로서 경험했던 일들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험과 견해를 엮은 글은 내 칼럼의 특징이자 많은 독자들이 꼽는 강점이었다. 지각감각적 경험이 심적 경험과 사회적 경험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처음에 떠올랐던 것은 두 가지였다. 감각 때문에 양치를 못해서 입냄새가 나 따돌림을 당했고, 우울증에 걸리게 된 일, 역시 감각 때문에 발톱을 못 깎아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 일. 그런데 나의 솔직한 경험이라 해도 이것들을 적으면 나의 사회적 평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았다. 비위 상하는 글을 굳이 장애계 언론에서 보고 싶어 할까? 차라리 트위터를 가지.


  좀 생각하다가, 너무 무겁지도 않으면서, 비위를 상하게 하지도 않으면서, 긍정적으로도 비칠 수 있는 경험을 하나 찾았다. 그것은 나의 (비공식적) 틱이었다.


  나는 하루에 두세 번씩 몸과 소리를 부르르 떠는 틱을 한다. 감각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고, 역시 감각으로 피드백이 온다. 잘 떨면 상쾌하기까지 하다. 나는 틱을 고칠 마음도 없었고 치료할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그런 나를 이상하게 봤다.


  가족들의 이상한 시선이 나의 사회적 경험과 심적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논리 전개를 쓰니 꽤 적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해당 칼럼은 사실과 다소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축소해서 적은 것이다. 사실 가족과 직장동료는 물론이고,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좀 억울하다.


  어울리는 경험을 선택하니 그 뒤의 전개는 수월했다. 나의 틱은 고칠 필요가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사람들이 나의 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특별한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폐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자폐인의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다음 칼럼의 주제인 이중공감문제와도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이 과정을 거쳐 나의 서평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제법 마음에 들게 뽑혀 나와서 만족스럽다. 월 2회 연재를 채우기 위해 다음 주부터 다시 창작의 고통에 빠지게 되겠지만 나는 믿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긴 고민과 짧은 집필시간을 거쳐 글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남은 서평 시리즈가 잘 나오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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