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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즘 Jul 22. 2023

장애인 칼럼니스트가 되다

  가족협회 토론회 이후로 2년 동안의 은둔을 끝내고 세바다 대표로 정신장애계에 복귀하였다. 나는 자폐인 자조모임 estas와 연대하게 되었는데, 마침 조정자님(대표 격인 회원을 estas 식으로 부르는 명칭)께서 나에게 한 가지 소식을 알려주셨다. 장애계 언론사인 에이블뉴스에서 칼럼니스트를 뽑고 있으니 지원해 보라는 말씀과 함께. 그 말씀은 나의 장애계 인생을 바꿔놓았다.


1. 장애인 칼럼니스트가 되다


  에이블뉴스는 나와 인연은 크게 없었다. 장애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글이 많이 올라오는 매체인 것은 알았다. 성명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아 편집국에 섭섭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무명 활동가였고 세바다 역시 신생 단체였다. 그런 내가 에이블뉴스처럼 유명한 언론사와 연을 맺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지만, 글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작가니 칼럼니스트니 글로 돈을 버는 일은 나와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세바다 블로그에서 칼럼을 쓴 것은,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체와 신경다양성 운동을 홍보하기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글쓰기의 즐거움보다는 단체 홍보라는 목적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칼럼니스트에 응모해 보라는 권유 역시 나 자신의 작문 커리어라기보다는 단체 활동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했다. 응모 기간이 짧은 것도 모르고 단체 회의까지 기다렸다. 회의에서 에이블뉴스에 응모해 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땐 마감을 두 시간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아뿔싸! 마감일시를 제대로 확인했어야 했다. 허둥지둥 대며 세바다 사무실에서 부랴부랴 지원서를 썼다. 칼럼방 제목을 생각하지 못해 길고 진부한 제목을 붙여놓았다. 이력을 대강 쓰고, 자기소개와 연재계획은 미등록 정신장애인 및 신경다양성 위주로 적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매력보다는 진정성에 포인트를 뒀던 것 같다.


  그리고 샘플로 보낼 글을 정해야 했다. 내가 썼던 글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글을 골랐다. 단체 블로그에서 신경다양성의 범위를 논증했던 글​과, 다른 소수자들이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판한 글​을 골랐다. 그리고 부랴부랴 pdf로 변환하여 메일을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정말로 칼럼니스트에 선정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되면 좋겠지만 어차피 안 될 거니까, 이것도 붙여줘야 하는 거니까 생각하고 어떠한 긴장감이나 기다림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자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리즘 님 글 에이블뉴스에서 볼 수 있겠네요, 축하해요~” 이게 무슨 소린가.  에이블뉴스 사이트의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내 이름이 선정자 명단에 적혀있었다. 선정을 축하한다는 문자도 있었다.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났다. 정말로 내가 칼럼니스트에 선정되다니.


  혹자는 나에게 깜짝 놀랄만한 결정이라고 말해주었다. 정말로 깜짝 놀랄 만한 결정이긴 했다. 세바다는 만들어진 지 1년도 안 된 단체였고, 나는 무명이었고, 장애인 복지카드도 없었고, 법외정신장애인 그것도 성격장애인이었다(지금은 다른 진단으로 장애등록을 했다). 그런 내가 주류 장애인 언론사에 들어간 것 자체가 놀랄 일이었다.


  당혹스러웠던 감정은 잠시, 신이 나서 여기저기 자랑하고 계속해서 선정자 명단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칼럼 집필을 시작했다. 오프닝 칼럼을 활동가가 된 계기와 미등록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내용으로 썼다. 그리고 ‘정말 일하실 수 있겠어요?’​를 비롯한 글 여러 편을 미리 써두었다.


  이듬해 1월 3일 칼럼방이 열리자마자 오프닝 칼럼을 보냈다. 칼럼은 순조롭게 올라갔다. 그러나 그다음 편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장애를 다루는 클럽하우스 방에서 나의 법외장애와 관련한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 원래 썼던 2회 차 칼럼이 아닌 새로운 칼럼​을 써서 냈다. 그 이후로도 당초의 계획을 지키지 않고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글들은 꽤 성과가 좋았고, 몇몇은 메인에 걸리기도 했다. 문득 내가 원래 계획했었던 글의 목차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계획했던 글들은 개인의 마음관리에 치중한 글이었다. 장애계 언론사에서 원했던 글이 아니었다. 이것들을 폐기하고 정신‘장애’에 대한 글을 새로 보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재계약까지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처음 계획처럼 정신과 의사들이나 올릴 법한 글을 보냈다면 지금까지 칼럼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브런치 작가 심사를 통과하고 나니, 계획했던 주제를 폐기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에이블뉴스에서도, 브런치에서도,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주제를 버리고, 나만이 쓸 수 있는 주제를 선택했다. 등록 정신장애인과 미등록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중적 위치에 속한 나만이 쓸 수 있는 주제를 생각해 목차로 정리해서 보냈더니 합격할 수 있었다.


  원래 계획했던 것들을 버리는 게 쉽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은 결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계획이 잘못된 계획이라면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에이블뉴스도 브런치도 나의 결단이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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