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즘 Jan 11. 2024

마감이 없는 글쓰기, 마감이 있는 글쓰기

  나는 지난 2년 간  '에이블뉴스'에서 마감이 없는 글쓰기를 해왔다. 월 2편 연재라는 제안은 있었지만, 특정한 마감일 없이 언제든지 CMS에 글을 기고하기만 하면 편집국의 데스킹을 거쳐 게재되는 형태였다. '에이블뉴스' 연재 시절 나의 매월 연재 스케줄(근사치)은 다음과 같다.

1일: 한 달이 바뀌었음을 실감하며 "슬슬 뭐 쓰지" 생각하기
2-5일: 주제 구상하기
5-10일: 그래도 주제가 생각이 안 나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11일: 주제가 생각이 날 것 같은데 안 나기
12일: 갑자기 주제가 생각이 나서 1시간 동안 집필하고 지인들에게 보여준 다음 송고하기
13-20일: 한 편이 끝났음을 자축하며 놀기
21일: 슬슬 불안감이 들기
22-25일: 주제 구상하며 괴로워하기
26일: 갑자기 주제가 생각이 나서 집필하고 송고하기
26-31일: 한 달의 원고 마감을 자축하기

  창살 없는 감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시간을 주제 구상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로 보냈다. 한 해의 연재를 미리 기획하지 그랬냐 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물론 나도 20편 이상의 주제를 구상한 적이 있다. 그러나 2편부터 쓰고 싶은 주제가 달라졌고, 정신없이 연재하다 나중에 그 주제 목록을 보니 매체에서 요구하는 것과 결이 달라 쓸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임기응변 식으로 주제를 정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사유로 '에이블뉴스'와 계약을 해지하고 두 곳의 매체와 새로 계약하게 되었다. 둘 다 마감일을 나에게 제시해 왔다. 칼럼이라고는 전 매체와 일시 청탁 경험밖에 없었던 나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나마 '더인디고'는 구체적인 주제 목록과 총 연재 분량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마인드포스트'는 완전한 기획 연재여서 더더욱 새롭게 다가왔다. 


  '에이블뉴스'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마감을 재촉하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원고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데스크와 씨름을 하게 될 것이었다. 다행히 나는 글을 상당히 빨리 쓴다. 2천 자 칼럼의 초고를 1시간 안에 쓸 수 있을 정도로 손이 빠르니 아직까지 큰 재촉을 경험하지 않았다. 매체를 옮긴 이후로는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강해져서 몇 달치 원고를 며칠 안에 다 보내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나의 글을 재촉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 달을 펑크 내도 그만이라는 것일까? 글을 받기 위해 전화와 문자 연락을 할 정도라면 그만큼 나의 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닐까? 과도한 비약일지도 모르나, 재촉은 기다림을 전제하고, 기다림은 그 동기가 무엇이든 대상에 대한 열망을 수반한다.


  어쩌면, 나는 나의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글쓰기는 외롭다. 그것보다는 누군가는, 내 매체의 담당 편집기자는 내 글을 간절히 기다려주는 게 조금이라도 덜 외롭지 않을까. 기다림 끝에 받은 원고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 원고를 소중히 편집하여 게재하는 행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번 달의 첫 원고를 완성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나의 두 번째 원고를 기다릴 사람들과 독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을 생각하며 성심껏 글을 써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애인 칼럼니스트가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