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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즘 Jan 09. 2024

당사자 활동가가 칼럼니스트가 된다면

  정신적 장애계에서는 장애당사자가 칼럼을 쓰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른 장애계도 그렇겠지만, 특히 정신적 장애계에서는 자폐, 정신, 지적 모든 당사자를 통틀어서 두 손에 모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필자가 적으며, 특히 한 매체에 고정적으로 칼럼을 연재하는 이는 극소수다. 칼럼니스트는 당사자 활동가에게 적합하지 않은 직업인가?


  나는 반대로 칼럼니스트가 당사자 활동가에게 매우 적합한 직업이라는 걸 이 자리에서 알리고 싶다. 이와 함께, 더 많은 당사자가 칼럼니스트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시작하고 싶다.





칼럼 쓰기는 자기옹호이다 

  칼럼을 쓰고 게재하는 일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해 다른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전달하는 행위이다. 칼럼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와 주제는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다. 칼럼 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의사소통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옹호 역시 그렇다. 자신이 누구이고, 나 자신이 지금 현재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있다면 왜 그것이 불합리한지를 스스로 인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바로 자기옹호이다. 그런 점에서 자기옹호 역시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칼럼을 잘 쓰는 사람은 자기옹호 역량이 높은 사람이다. 칼럼을 잘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도록 정리하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뜻이다. 특히 당사자 활동가로서 겪는 고충과 어려움, 사회적 장벽을 당사자의 관점에서 잘 풀어내는 사람은 자신이나 다른 당사자가 처한 차별에도 민감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칼럼 쓰기는 자기옹호 역량을 기르는 훈련이다. 


칼럼 쓰기는 기회의 장이다

  내가 운영하는 단체 '세바다'가 알려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에이블뉴스'에 2년 간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이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많은 사람이 알 수 없다면 좋은 영향력을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칼럼을 쓰는 지면은 활동가로서의 자기 자신과 당사자단체를 소개할 수 있는 좋은 통로이다. 언론은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보는 곳이며, 편집자가 있어 검증된 글이 올라온다. 매체 자체가 저명한 경우에는 그곳에 글을 기고하는 것이 커리어에 많은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저명한 매체에 자신과 단체에 대한 글이 올라가고, 그것이 호응을 얻는다면 칼럼니스트로서의 개인의 명성도 높아지겠지만, 그것을 통해 더 많은 기회가 들어온다. 인터뷰가 들어올 수도, 다른 당사자단체에 취직할 수도, 프로포절을 쓸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칼럼은 장애당사자의 자산이다

  칼럼은 저자 자신만의 자산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활동가가 속한 장애계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한 사람의 활동가가 남긴 글은 다른 당사자를 인권침해에서 막아주는 방패가 될 수도, 동료지원을 동기부여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칼럼은 개인의 이름을 걸고 쓰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당사자의 칼럼에는 다른 당사자가 기대하는 꿈과 희망이 걸리게 된다. 나 자신이 글 한 편을 씀으로써 다른 당사자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생을 이어갈 희망을 준다는 것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전문가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칼럼은 소중한 부수입이다

  당사자 활동가, 아니 인권활동가라면 그 직업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운지 알 것이다. 비영리 사업의 모델이 한정되어 있고, 지원금도 적기 때문에 많은 급여는 물론이고 자신의 경력에 걸맞은 수준의 임금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칼럼은 소중한 부수입원이 될 수 있다. 칼럼을 쓰면 건당 2-20만 원을 얻을 수 있다. 한 달에 2편 쓴다고 가정해봐도 그리 많은 원고료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금액이다. 누군가에겐 턱없이 적은 금액이 다른 이에겐 주수입의 20% 이상에 다다르기도 한다.


  항심은 항산이 있어야 생기는 법이다. 적지만 꾸준한 부수입이 생긴다면 활동가의 힘이 될 수 있다.




  칼럼니스트는 당사자 활동가 자신뿐만 아니라 당사자 모두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는 직업이다. 쉽게 여겨선 안 되겠지만, 그것보다는 더 많은 당사자들이 감히, 무모하게 이 일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기도 하지만, 나 혼자 쓰기에는 너무 외로우니까.




  '에이블뉴스'에 연재했던 '신경다양한 세계' 시리즈는 올해부터 브런치에서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을 새로운 자리에서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외에도 저의 글은 매월 2회, '더인디고'와 '마인드포스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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