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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 곽동희 Jul 24. 2023

사랑은 별을 닮는다

초신성과 연어의 사랑법

  북미 알래스카 한가운데에는 페어뱅크스(Fairbanks)라는 도시가 있다. 극한의 기후로 알려진 이곳에는 약 3만 명 정도의 제법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이곳은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회귀하는 최종 목적지이기도 하다.


  십수 년 전 이곳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곳 조그만 뷔페에서 맛보았던 선홍색 연어회의 기억이 생생하다. 색도 그렇지만 회 맛도 우리가 알고 있는 주황색 연어회와는 사뭇 다르게 푸석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생소하고 뭔가 건강한 맛으로 느껴져 여러 번 손이 갔었다. 그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색과 맛이 달랐던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식재료 공급이 어려운 그곳에서는 인근 하천에서 직접 잡은 연어를 회 썰어서 내놓는단다. 멀고 먼 그곳 끝단까지 올라간 연어들은 힘든 여정에서 몸속 지방을 모두 소진해 버려 살색이 그렇게 선홍으로 짙어진단다.


  선홍색의 퍽퍽한 연어 살에서 험난하고 처절한 연어들의 숙명이 마음에 시리게 다가왔다. 무엇이 그 먼 곳으로 이끄는 것일까? 험악한 계곡 물길을 필사적으로 거슬러 올라 알을 낳고 방정의 숙제를 마친 연어는 마지막 죽음으로 자신의 몸을 세상에 내어주고 사라진다. 여기서 모든 연어가 마지막 여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정과 자신의 죽음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연어는 그 험난한 여정에서 성공한 연어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모든 역경을 이겨낸 체력과 투지를 가진 연어만이 자손을 남기는 대업에 동참한다.


<방정 후 죽어가는 연어> https://wildsalmoncenter.org/salmon-species/sockeye/


  연어의 방정과 같은 생물의 생식 과정은 별들의 생애와 비유되곤 한다. 별들도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탄생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순환 과정을 갖는다. 별들은 살아 있는 동안 핵융합반응을 통하여 내부에 탄소나 산소같이 무겁지 않은 원소들을 만든다. 태양과 같은 보통 크기의 별들은 핵융합 재료가 소진되면 서서히 빛을 잃고 죽어간다.


  이와 달리 크기가 매우 큰 별인 초신성(supernova)은 훨씬 더 드라마틱한 생애주기를 갖는다. 초신성은 태양처럼 점차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폭발로 사라진다. 강력한 빛을 발산하며 산산이 부서져 생을 마감한다. 초신성 내부에서는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지며, 폭발하는 순간에는 더욱 큰 에너지로 인하여 우라늄, 토륨과 같은 방사성 원소들을 만들어 우주 먼 공간으로 흩뿌린다. 이렇게 멀리 퍼져 나간 무거운 물질들은 우주에 퍼져 있는 성간물질을 뭉치게 하여 새로운 별을 탄생시키는 씨앗이 되는 것이다.


  생명 탄생의 시작인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수정과정은 초신성이 만든 무거운 물질과 우주의 성간 물질과의 결합으로 별이 탄생하는 과정과 판박이다. 특히, 내부의 엄청난 압력과 온도를 견딘 거대한 별, 초신성만이 가능한 것과 아득히 먼 고향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귀향에 성공한 연어만이 생명 탄생의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비슷하다. 대업을 이룬 후에 사라져 가는 모습은 초신성이든 연어이든 측은함보다는 장렬함이다.


  우리는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 이야기를 접할 때 쉽게 감동하고 공감한다. 그 사랑이 언제든 누구든 상관없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큰 별을 보듯 숭고한 마음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바치고 세상을 떠난 사랑에게 우리는 그 사랑이 별이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을 불살라 사랑과 새 탄생을 이룬 초신성의 모습이니 어찌 그 표현이 어색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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