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해 Aug 13. 2024

여명(黎明) , 여운 (餘韻), 여백(餘白)



2024.08.14

인생을 살다 보면 별의별 일도 다 겪고 별별 인간도 다 만나면서 희비쌍곡선의 커브를 타기도 하다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라는 푸시킨의 시를 위로 삼아 해뜨기 직전이 가장 춥다고 하는 새벽을 버티며 일출을 기다리는 여명의 눈동자는 고진감래(苦盡甘來)를 기다리는 희망찬 눈빛이다.

여명이 밝아오고 먼동이 트면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고 때 맞춰 수평선을 가르고 나타나는 고기잡이 통통배는 일출을 가리는 검붉은 구름을 등에 업고 새벽을 너머 아침을 깨운다.

검붉은 구름을 헤치고 뚫고 나온 중천의 태양이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면 지축을 흔들며 나타났던 태양의 울림은 깊은 여운을 남긴 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명과 여운으로 시작되는 하루는 또 하나의 여백으로 우리 모두에게 다가와 연시매최 희휘랑요(年矢每催曦暉朗耀), 즉 세월은 화살과 같아 매양 재촉하지만 아침햇살은 언제나 밝고 빛나는 것이다.

이처럼 여백의 미는 여백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채움이후에 비움이 있어 돋보이는 것이다.

학문을 하면 나날이 늘어나고 도를 닦으면 나날이 줄어드나니, 줄어들고 줄어들어 행함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행함이 없는 것으로 행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라는 노자의 말씀은 학문이라는 채움과 도라고 하는 닦음, 지식이라는 쌓음과 지혜라고 하는 행함을 명쾌하게 밝힌 것이다.

이처럼 학문이나 지식의 군더더기를 잘못 채워 넣어 우리 안의 여백까지 막게 되면 마치 복잡한 도로에 교통체증 (traffic zam) 이 나서 자동차가 오도 가도 못하는 지경으로 내몰리는 것 같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은 물론 뇌 속의 뉴런을 이어주는 시냅스의 과부하를 일으켜 돌아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고 메커니즘의 무한루프 속으로 우리를 내몬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참선(參禪)이다. 참선(參禪)은 선사(禪師)에게 나아가 선도를 배워 닦거나, 스스로 선법을 닦아 구한다는 의미다.

 학문과 달리 모든 것을 단순화시켜 보는 것에 참여하여 지식의 찌꺼기를 닦아 내는 일체의 행위를 참선이라고 하며 이것이 도를 닦아 잡다한 지식을 줄이고 줄여 직관적이며 휴리스틱(heuristics) 한 지혜로 나아가기 위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여명이라는 희망찬 하루를 시작하여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서 하루라는 여백을 채워 나가는 우리의 일상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일상이 거듭된 우리의 인생은 틈도 여백도 없는 빡빡한 일정의 연속으로 우리를 내몰고 이러한 습관이 관성이 될 무렵 우리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여백의 블랙홀에 빠지고 그 여백은 채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비워야 채워지는 여백이라는 여운의 울림을 그제야 깨닫고 비우는 것의 아름다움 , 여백의 미에 한발 다가서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까진 무릎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