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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Aug 17. 2024

인간은 보고 공간은 느끼며 시간은 기록된다



2024.08.18

중이 제 머리 못 깍듯이 자기의 모습을 자기가 못 보고 겨우 세상 속에서 사는 인간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보고 보여줌으로써 경아(鏡我)로부터 진아(眞我)를 추구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세상에 비추어 보는 경아적 존재로서 나 자신의 한계 때문에 우리는 고장 난 녹음기처럼 세뇌된 남의 말을 제 생각인 양 반복하기도 하고 고장 난 벽시계처럼 왜곡된 시침과 분침이라는 잣대로 엉뚱한 시간을 기록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세상이라는 공간 속에서 시간을 기록하며 경아(鏡我)적 존재로써 진아(眞我)를 추구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이 연속되는 왜곡 현상이다.

나이는 인간이 공간을 살면서 시간을 기록한 증거다. 유난히 나이에 대해 민감한 우리들에게는 나이라고 하는 시간의 기록에 대한 느낌과 규정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고 항상 나잇값을 하도록 은연중에 강제하고 있는 느낌을 배제하기 어렵다.

2세 이후 해제(孩提)를 시작으로 15세 지학(志學) 16세 과년(瓜年) 20세 남녀를 각각 약관 (弱冠) 방년 (芳年)으로 부르고  30세 이립(而立) , 40세 불혹(不或), 50세 지천명(知天命),60세 이순 (耳順),61세 환갑 (還甲),62세 진갑 (進甲),70세 고희 (古稀),71세 망팔 (望八),77세 희수 (喜壽),80세 팔순 (八旬),81세 망구 (望九), 88세 미수 (米壽), 90세 구순 (九旬), 91세 망백 (望百),99세 백수(白壽),100세 상수 (上壽)와 같이 써놓고 나니 현란하기만 나이별로 별칭이 존재함에 아연해진다.

이 나잇대 별로 별칭의 의미를 헤아려 나잇값을 하며 인생여립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발가벗고 태어나 경아(鏡我)로서 살아가다 진아(眞我)를 찾아가는 ' 나는 누구인가?'라고 하는 인생 화두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밤하늘에 빛나는 발광체로 출발한 우리가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분명한데도 세상이라는 진아(眞我)가 아닌 경아(鏡我)들로 둘러싸여 고장 난 녹음기처럼 고장 난 벽시계처럼 발광체로 빛을 내지 못하고 그저 왜곡된 인간들을 반사하는 반사체로 공간을 살며 시간을 기록하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균형감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우리는 나잇값을 하고 살 수 있는 존재 아닐까?

세상을 사는 인간만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든 세상이라는 공간도 인간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힘차게 출발했던 대한민국도 이제 고희를 넘고 망팔을 넘어 팔순이라는 턱밑까지 달려왔다. 우여곡절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겠지만 그래도 그 우여곡절을 딛고 일어서 포기하지 않고 달려와 지금의 살만한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화씨지벽의 고사처럼 완벽한 대한국은 아니지만 그래도 79년 전에 우리와 함께 출발한 올망졸망한  신생 독립국들의 지금과 비교하면 넘사벽 선진국 대한민국을 만든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 뚜렷한 팩트는 당연한 기본이라 우기며 과거의 우여곡절을 지금의 잣대로 해부하고 재단하는 것은 나나 나라나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나잇값을 못하고 사는 일이다.

요사이 술 먹을 일이 없어 건배사 할 일도 많지 않지만 핫한 건배사가 빠삐따라고 친구가 귀띔해 준다.

이제 사라지고 있는 추억의 경로당에서 10원짜리 내기 화투를 치다가 화투판이 싸움판이 되기 십상인 팔순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과거가 현재를 잡아먹는 나잇값 못하는 빠삐따, 즉 빠지고 삐지고 따지는 행동은 조금이라도 줄여가는 것이 화합과 나잇값을 동시에 잡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번영으로 이끄는 디딤돌이 되어 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첩경임을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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