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 록] 구름을 사모하기도,외로운 구름이 되기도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마라.
세상을 살면서 상식과 다르게 무엇인가를 도모하거나, 자기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과하게 표현하는 순간 우리는 의도치 않게 기성세대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부정 당하고 괜한 핀잔과 조롱 섞인 말을 듣기도 한다.
뜬 구름이라는 말이 무엇일까? 지각 위에서 중력에 의존하여 거꾸로 매달려 지접을 하지 못하고 넘어질 듯 말 듯 공간을 이동하며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이 하늘을 보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낮에는 찬란한 태양이요 밤에는 은은한 달빛이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니 태양과 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과 달 사이에 생겼다 말았다 하는 마치 이불 같기도 하고 새털 같기도 하고 양 떼 같기도 한 뭉게뭉게 피어나기도 하며 시커멓게 변하기도 하다가 별안간 우레와 같은 천둥 번개가 치다가 장대 같은 소낙비가 귓전을 때리는 뜬 구름과 비가 연출하는 하늘의 우주쇼를 거저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다 온몸이 생쥐처럼 흠뻑 젖곤 한다.
결국 태양에 갈 수도 달에 가본 적도 없는 우리 인류 조상들이 만지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구름과 비였을 것이다.
비는 비어있다고 비다. 그 빈 물을 가지고 생명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비워주는 모든 행동이 생명활동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구름이 지각에 깔리는 저기압의 날씨에서, 또는 산과 같이 높은 곳에 올라가 뜬 구름을 보고 손을 내밀어 잡아보면 비와 비슷한 듯 다른 듯 실체는 보이는데 도무지 잡을 수 없는 것이 하늘에 떠있는 뜬 구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해유록(海游錄)의 저자 신유한(申維翰1681~1752)은
1719년(숙종 45) 통신사 제술관(製述官)으로서 뽑혀 일본에 가서 요즈음 아이돌급 인기처럼 글을 가지고 글을 청하는 인파로 거리가 메이고 문이 막힐 지경이었으며, 앉은자리에서 수백 편을 일필휘지해 일본 문인들을 찬탄케 한 인물이었지만 , 정작 그는 조선에서 서얼이라는 신분의 한계와 소설을 배척하고 성리학 고전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모순적인 그 시대 문체반정의 희생양으로서 고달픈 관료 생활을 해야만 했었다.
그런 그가 한양의 꽉 막힌 구중궁궐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자유롭게 하늘을 유영하는 뜬구름을 사모하여 경운(景雲)이라는 호를 짓고 ‘해산금(海山琴)’이라 이름 붙인 가야금을 안고 가야산 은거를 결심한 신유한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무릇 대장부란 아무리 좋은 자리에서 발목이 잡혀도 풍요에서 빠져나오는 용기와 결기가 없다면 그의 인생은 졸장부로 마무리되는 법이다.
구름을 사모한 경운(景雲) 신유한은 자유가 없는 한양도성 경화세족(京華世族)에서 빠져나와 신라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천하의 명문장을 떨친 고운(孤雲) 최치원이 해운대(海雲臺)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외로운 구름이 된 고운(孤雲)의 뒤를 따른 것은 아닐까?
대장부의 결심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경주에서 한 기생을 만난 경운(景雲)의 뜬구름은 영특한 매화란 뜻의 ‘영매(英梅)’라는 39세의 기생을 만나 해산금을 매개로 대장부는 꼿꼿한 대나무가 되고 영매는 한 떨기 매화가 되어 시든 꽃과 예순이 넘은 파리한 대나무가 눈 내리는 황량한 겨울의 벌판에서 나누는 운우지정의 로맨스그레이가 어찌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사랑보다 부족하다 하리오.
경운(景雲) 신유한은 고운(孤雲) 최치원도 못 잡은 뜬구름을 잡은 것을 보니 백 마디 문장보다 사모하는 한마디가 팔자를 바꾸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