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해 록] 귀소본능 歸巢本能과 모험본능冒險本能
귀소본능 歸巢本能은 모험본능冒險本能과 같이 우리의 유전자에 뿌리 깊게 각인된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Nature's super senses의 꿀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평화의 상징 비둘기, 흥부놀부전의 제비는 우리 주위에서 인간과 늘 함께 하고 경탄과 번성, 긍정적 이미지와 인과응보의 교훈까지 덤으로 주는 귀소본능 歸巢本能을 하는 대표적 생명체들이다.
지구에는 암수가 나뉘고 밤낮이 존재하며 그에 따른 섭리와 원리에 따라 운명과 숙명에 순응하며 본능과 이성으로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모험冒險과 거자필반去者必返의 귀소歸巢를 반복하는 것이 지구를 사는 생명체의 일상이다.
이처럼 떠나려는 자와 막아서려는 자 간의 생명계의 법정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변론이 모두 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둥지로 돌아가려는 귀소본능과 마찬가지로 , 둥지를 박차고 나가야 살 수 있는 모험본능이 없으면 그 생명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이처럼 안락한 둥지를 떠나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간 모험가들 덕분에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알아나가고 문명의 원리를 세워나갈 수 있게된 것이다.
우리가 비록 개미처럼 모여 살면서 비둘기처럼 평화를 꿈꾸고 꿀벌처럼 단 꿀을 빨며 살아도 강남으로 날아간 제비가 박씨를 물고 나타나 그 박씨가 지붕에 주렁주렁 박이 열매가 되어 열려 대박 나는 흥부가 되려면 귀소 하여 돌아온 제비의 다리가 부러졌을 때 진심으로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는 적선지가積善之家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강남으로 떠난 제비가 그 이듬해 박씨를 물고 귀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떠날 수 있는 것은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보금자리를 만들고 허물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돌아오고의 반복이다.
보금자리를 만들 때에는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하다가도 상황이 바뀌거나 싫증이 나면 가차 없이 쓰고 버리는 것이 문명의 원리라면 모험冒險본능으로 집을 떠나 위험을 무릅쓰고 싸돌아 다녀도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따뜻한 마음 하나 부여잡고 죽을 때는 수구지심首丘之心의 마음으로 고향을 바라보고 귀소歸巢하고자 하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시각문명에서 귀소歸巢하고 있는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冒險을 떠나려는 이유는 대자연의 섭리를 느끼고 이해하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귀소 하여 가정을 지키는 절대자, 안해의 뜻에 거스르고 떠나는 모험이야말로 그대에게 가장 큰 모험이라는 것은 알고 떠나는 것인지 심히 염려가 된다.
집을 박차고 나갈 그대가 겪을 대자연 속의 모험담의 한 페이지는 귀소 해서 두고두고 겪을 귀소본능의 끝판왕 안해와 겪을 모험담의 한 권에 비하면 어쩌면 너무 밋밋하고 간략할지도 모르겠다.
진짜 모험담의 시작은 집을 떠날 때가 아니라 모험冒險을 끝내고 귀소歸巢 해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