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나(The King and I)는 20세기 폭스사가 1956년에 만든 뮤지컬 영화이다. 마거릿 랜던의 소설 '애나와 시암의 왕'을 바탕으로 했다. 1860년대 초 시암의 국왕 라마 4세 아이들 가정교사였던 애나 리어노어스의 자전적 이야기 '시암 궁전의 여자 영어 가정교사'를 소재로 했다고 한다.
수십 년 전 명절 때마다 자주 TV를 통해 방영된 왕과 나(The King and I)는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율 브리너가 라마 4세, 몽꿋왕을 데버라 카가 애나 리어노어스를 맡아 아름다운 노래와 카리스마 넘치는 율 브리너의 열연이 뇌리에 남았다.
문명을 만들고 역사를 살아온 내내 우리 인류는 내세에는 신을 필요로 했고 현세에서는 왕을 필요로 했다.
이처럼 정신은 신과 함께 , 몸은 왕과 함께 역사를 써 내려간 우리 인류의 신앙과 잠재의식 속에 깔려있는 뿌리 깊은 믿음은 나가 주인이 되어 만든 나라, 자유 민주주의라는 가치 중심의 체제를 만들어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의인화된 신을 믿듯이 나의 자유의지로 행해야 할 권리와 의무를 대의정치라는 미명하에 송두리째 특정 인물에게 내 맡기는 팬덤정치에 기대어 자신의 욕망을 무한 투영시켜 혹세무민 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가 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나라의 처참한 현실이다.
왕과 나의 시대에서는 혹세무민의 모든 책임을 군주인 왕에게 뒤집어 씌울 수 있겠지만 나와 나라라는 자유 민주주의 나라에서는 모든 책임이 나라의 혼란을 자초한 나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왕과 나의 시대에서는 왕이 왕왕거리는 충직한 개처럼 나를 지켜주리라 일말의 기대라도 할 수 있지만 나가 만든 나라는 나의 자유의지에 기초한 판단으로 나를 지키지 못하면 수많은 나가 만든 나라라고 하는 가치중심적 국가는 한순간 내부모순에 빠져 폭망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인물중심의 왕이 다스리는 군주제 국가와 자유민주라는 가치중심의 수많은 나가 모여 만든 자유민주체제의 나라는 그 출발부터가 천양지차인 것이다.
서구 사회가 군주제를 무너뜨리기까지 수백 년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피로 얼룩진 희생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쌓아 올린 것과는 달리 일제의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조선이라는 군주제가 무너지고 인류 최대의 전쟁, 2차 세계대전의 전후 협상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의 첫 단추를 그 당시 세계열강의 그 어떤 리더의 스펙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고 오히려 뛰어나기까지 하며 망국과 독립과정에서 무려 40여 년을 준비한 리더가 끼운 것도 신생 대한민국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여전히 왕조국가란 체제만 경험한 민초들에게 자유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지난한 과정이 우리가 건국 이후 지금까지 걸어온 가시밭길이었다. 그 과정에서 동족상잔의 전쟁, 테러와 학살 그리고 시위와 타협이라는 돌부리에 넘어지고 자빠졌어도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건국의 첫 단추가 든든히 끼워졌기에 우리는 잘살아 보자라는 산업화의 두 번째 단추 마저 기어이 끼울 수 있었다.
민주화와 산업화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두세 대 이상의 피와 눈물 그리고 땀이 버무려져 얻어 가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첫 번째 단추, 산업화라고 하는 두 번째 단추 이제 선진국 진입과 통일이라는 세 번 째 단추를 끼워야 하는 어렵고도 지난한 목표 앞에 우리는 서 있다.
왕과 나가 아닌 나와 나라의 국민으로서 두 눈을 바로 뜨고 여전히 왕과 나로 살고 있는 분단된 북녘의 우리 동족에게 나와 나라라고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나라를 분열시키고 혼란의 도가니로 몰고 가려는 기회주의적이고 이기적인 광기의 부패 야합세력의 선동을 척결하고 세 번째 단추를 이제 바로 끼우라는 선열의 소리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