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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 품격과 여유의 골든타임

by 윤해

품격이라는 인품은 여유에서 나온다. 시간에 쫓기듯이 조바심을 부리는 즉시 일은 꼬이고 업은 쌓이며 여유는 사라지고 품위는 추락한다.

세계사도 동세서점東勢西漸의 시절에 여유를 부렸던 동양이 대항해 시대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가 오면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부와 노동력을 독점한 유럽 열강들에게 형편없이 밀리면서 대륙 세력의 중심인 전통의 강호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나라 마저도 아편전쟁을 통해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챈 서구 열강들에 의하여 속수무책의 침탈을 당하고 있었다. 아편전쟁 이후 20세기 초까지 계속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세계질서는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종언을 고했지만 역사는 돌고 돌아 21세기 지금의 세계가 19세기 각자도생의 제국주의 질서로 급속히 회귀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평행이론은 쉼 없이 반복되고 있지만, 천시와 지리 그리고 어떤 인간을 만나느냐 에 따라 선세와 악세가 결정된다.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고 품위마저도 헌신짝 같이 버리면서 협잡과 권모술수를 총동원하여 권세와 재물 그리고 여자까지 밝히면서 완장차고 설치는 악세의 빌런들의 출몰을 공동체가 막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세상의 품격은 땅에 떨어지고 분열과 갈등은 첨예하게 전개되어 품격과 여유의 골든타임이 사라져 가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다.

이처럼 천시는 지리에 영향을 미치고 지리가 어떤 인간을 키워내는가에 따라 세상의 선악은 정해지는 것이다.

구한말 무례하고 방자하고 안하무인에 여색까지도 밝혔던 26살의 위안스카이는 주차조선 총리교섭 통상사의駐箚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라는 완장을 차고 1882년에 임오군란 진압을 명분으로 눌러앉아 감국대신監國大臣이라는 직함으로 내정간섭을 하면서 조선의 근대화를 집요하게 방해하면서 결과적으로 조선을 망국의 상황으로 내몬 악질적인 인물이다.

조선에서 혼군 고종과 민비 척족들이라고 하는 우유부단하고 비겁한 매국적 권력자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1882년 임오군란부터 1894년 청일전쟁까지 12년간에 걸쳐 학습한 위안스카이는 조선에서의 경험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청나라 내각총리대신에 오르고 1911년 신해혁명 진압 과정에서 배신을 밥 먹듯이 하면서 북양군벌이라는 뒷배를 믿고 청나라와 중화민국 사이를 오가며 청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 신해혁명 과정에서 중화민국 정부 수립에 온갖 혼란을 가하여 중국 대륙을 군벌들의 놀이터로 만들면서 내전상태로 몰고 간 희대의 빌런이 위안스카이이다.

천시는 돌고 돌아 구한말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지리는 각박한 천시에 따라 일촉즉발의 전쟁의 전운이 분쟁지역들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천시와 지리에 힘입어 세계 각국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빌런들이 도처에서 출몰하고 있다.

저마다 구세주의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세계질서가 용트림하는 순간 그들 중 누군가는 희대의 빌런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신사의 품격은 여유에서 나오지만 구세주 라고 하는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빌런들은 무엇에 쫓기는 듯 무엇에 홀리는 듯 조바심과 조급함을 달고 살면서 공동체가 돌아가야 할 다리를 불사르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역사의 교훈은 이처럼 엄정하고 반복된다. 천시 지리 인간이 어우러져 격동하는 패권질서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 전략은 패권전선이 둘로 나뉠 때 같은 진영 안에서 유효하다. 1950년대 냉전 질서 속에서 산업화를 시작했고, 1990년대 팍스아메리카나 시절 스몰 아메리카 전략으로 산업화를 완성하고 미 합중국과 막 산업화를 시작한 중국이라는 두 개의 중국 사이에서 국제 무역의 밸류체인을 완성하여 세계화의 파고를 윈드서핑 하듯이 타고 넘어 기어이 기적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 국민들 앞에 천시가 변하고 지리가 요동치면서 나라 안팎으로 19세기에 등장한 위안스카이와 같은 희대의 빌런들이 출몰하고 있다. 그들이 노란 완장을 차고 대한민국 미래의 싹을 노랗게 만들지 못하도록 우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저지해야 할 책무가 있다.

19세기말 각자도생과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침탈로 인한 망국이라는 고통의 기억을 소환하여 혼군 고종과 민 씨 척족 그리고 을사오적과 같은 내부의 빌런들이 위안스카이와 같은 외부의 빌런들을 끌어들여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만큼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 아울러 21세기 패권전쟁이라고 하는 반복되는 백척간두의 위기와 기회 앞에서 품격과 여유의 골든타임을 되살릴 의지와 힘이 부디 우리가 사는 공동체 안에 남아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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