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에 발표된 백년설의 노래이다. 옛 가요 중 대표적인 노래로 손꼽힌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했다는 평가에서부터 남녀 간의 이별과 재회를 기약하는 구슬픈 멜로디는 망국과 건국, 전쟁과 복구를 통해 도약했던 다이내믹 대한민국에서 가사를 달리하고 가수가 교대되면서도 불후의 명곡으로 한국인의 정서의 심연을 건드리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제 주막도 사라졌고, 번지도 구시대의 추억으로 묻히고 자동차의 목적지를 입력할 때 번지를 입력하면 도로명으로 변환되기 일쑤인 현대에서 번지와 주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꽃에 꽃말과 이름을 붙여야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듯이 사람에게도 이름을 불러야 비로소 세상 속의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주소를 알아야 가야 할 곳을 찾아가는 공간 속에서 시간을 사는 인간의 일생은 어쩌면 번지 없는 주막을 찾아가는 나그네의 여정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보인다.
1940년 번지 없는 주막에 앞서 1926년에 윤극영선생이 작곡한 동요 반달은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를 타고 가는 연약한 토끼 한 마리 신세인 식민지 조선을 연상시키는 반달이라는 노랫말에서 만월을 향해가는 상현의 모습인지 동지섣달 그믐밤이 떠오르는 하현의 모습인지 모르는 것이 순간을 살고 시간에 무감각하며 그저 공간에 목매는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는 샛별 등대를 찾아서 은하수를 가로질러 쪽배에 몸을 의탁하는 토끼와 같은 처지인 우리의 인생에서 비록 망국의 식민지 신세는 벗어났다고 해도 세상이라는 공간은 갖가지 형태의 폭력과 문제로 가득 차 있다. 과거를 비추어 현재를 보고 그렇게 본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인간 뇌정보 문명은 이제 효용가치를 다하고 있다. 7만 년 전 인지혁명 이후의 문명 세상은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일직선상에 놓인 시간의 흐름을 창조하였지만 그 흐름은 오로지 수학적 가정과 과학적 증명으로 지탱되었다.
가정과 증명이라고 하는 뇌정보 기반 문명은 이제 인류를 더 이상 유전정보의 풀 안에서 만 머무는 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생체가 아니라 뇌정보와 유전정보를 데이타화하여 과학기술로 나누고 발전시키면서 수학적 가정의 한계를 돌파하여 신이 만든 신경망을 전기적 신호로 작동하는 뉴런으로 대체하면서 시작된 인공지능 AI 혁명은 2025년 마침내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서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이제 우리 인류의 처지는 번지 없는 주막을 찾아가는 낭만적 나그네가 아니라 어쩌면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푸른 하늘 은하수를 타고 표류하는 가여운 토끼처럼 효용을 다한 생체를 쪽배 삼아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는 샛별 등대의 불빛도 사라지고 없는 전대미문과 전인미답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돛대라고 믿는 AI도 삿대라고 확신하는 AGI가 과연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인류의 여정에서 번지와 주소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되어줄지 아니면 뇌와 몸이 분리된 데이터 기반의 히드라와 같은 괴물이 되어 인류를 잡아먹을지는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기술은 누가 그 기술을 통제하는 마스터 키를 쥐고 있느냐에 따라 문명의 향배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감정을 가진 인간, 유전정보와 뇌정보를 함께 가진 인간 그로 인해 기억을 가지게 되고 그 기억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 7만 년을 달려오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뇌정보 데이터로 만든 AI가 머리가 되고 현대 기계문명이 만든 로봇과 결합된 미래의 세상은 그동안 기억과 감정을 가진 생체 인류가 걸어온 7만 년과는 비교불가한 무게로 우리 인류를 압박할 것이다. 기억이 있어도 분절화된 데이터의 맥락을 쫓아 오로지 관계 만으로 대응할 차가운 기계인간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다음 세대의 NEXT 인류가 될 것이다. 이미 세상의 도덕과 시속 그리고 가치관이 분절화되고 파편화되면서 인류는 자발적 멸종의 길로 접어들고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는 번지 없는 주막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 번지 없는 주막이 타는 저녁놀처럼 술 익는 마을이 있는 유토피아적 세상이 될지 인간의 향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무미건조하며 심지어 인공의 악취까지 가득한 디스토피아적 세상이 될지 우리는 기로에 서서 인류의 인문학이 AI 인문학으로 어떻게 넘어갈지 안갯속에서 다만 바라보는데서 그치지 말고 안개를 걷기 위해 오늘도 사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