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바라볼 때 좌우가 뒤에서 바라보면 우좌가 되는 거꾸로 보는 세상의 시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나 녹음된 자기의 목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낯선 오체불만족의 덫에 빠져들어 진아와 경아 사이에서 진경산수화를 그리면서도 무엇이 실상인지 무엇이 가상인지를 햇깔려 하면서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가질 수도 없는 전지적 시점에 목말라하기도 하는 것이다.
전후좌우 사방팔방 동서남북 춘하추동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가 세상 속의 인간이라는 틀 안에 갇혀 세상이 강요하는 원리를 따르면서 온갖 협박과 회유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걸어 들어간 세상의 굴레 안에서 살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고 안목이 줄어들면서 좌고우면左顧右眄 하기 시작한다.
앞뒤가 똑같은 천진난만한 애기가 표리부동하는 세파에 찌들어 가는 어른으로 변해가면서 세상은 선세에서 악세로 바뀌어 간다. 이처럼 선세와 악세는 좌우처럼 앞뒤를 바꾸어 교차되면서 앞에서 보면 좌우가 되고 뒤에서 보면 우좌가 되는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욕망과 가치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바라보는 가에 따라 세상은 선세로 보이기도 악세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과 지점은 지구에 지접 하고 사는 식물과 달리 지구를 두 발로 디디며 지각을 활보하면서 끊임없이 옮겨 다니고 한시도 쉬지 않고 변화하는 동물로서 더구나 인지혁명을 거쳐 호모사피엔스로 거듭난 세상 안의 인간에게 있어 전지적 시점이라고 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신 만이 볼 수 있는 경지이지 선세와 악세를 두루 해갈하며 사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아득한 피안의 세계이자 그냥 막연히 도달하고 싶은 이상향에 가까울 것이다.
이처럼 시공의 변화와 이동은 인간으로 하여금 변화무쌍한 시점이 주어졌고 그 시점은 곧 권력을 낳았으며 권력의 이양은 시점의 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여기서 보고 저기서 보는가에 따라 결과는 180도 뒤집어지고 뒤집힌 가치관에 의해 상대는 타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절멸시켜야 할 적으로 간주되어 인간 세상의 역사는 순식간에 전쟁사로 얼룩지는 것이다. 한바탕 전쟁이라는 참혹한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밀려드는 공허감에서 인간의 시점은 용도를 다하게 되고 전지적 시점으로 열광하며 달려가는 것이 안타깝지만 세상을 사는 인간의 한계 인지도 모른다.
인류의 역사는 시점을 바꿔가며 공간을 창조한 결과이다. 그렇게 다양한 시점이 역사에서 존재하다 사라지는 동안 문명의 방향과 권력의 방향도 변화되었으며 변화된 시점에서 바라보는 가치관에 따라 뉴노멀이 정착되었고 새로운 시각을 가진 새로운 인류가 다음 세대를 이어가면서 진화는 늘 급물살을 타면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15세기 지리상 발견 이후 항해용 지도가 절실해질 무렵, 1569년 네덜란드 게르하르두스 메르카토르가 고안한 지도 투영법에 따라 만들어진 지도에 따르면 세상의 중심은 대서양이었고 , 유럽이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보다 면적이 상대적으로 과장되었다. 즉 작은 유럽이라는 곳이 다른 세계와 비등하거나 더 커 보이게 되었으며, 이러한 지도에 고무된 유럽인들에게 유럽 우월주의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심어 주었다. 서세동점이라고 하는 제국주의 질서의 시작은 어쩌면 이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만든 지도 한 장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후 거리, 모양, 방향, 방위, 형태, 면적 왜곡을 줄이기 위해 만든 로빈슨 도법은 가상 원통 형태의 도법으로 직사각형으로 만들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음에도 시각적으로 봤을 때 가장 실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세계지도였으며 이후 이 두 가지 도법으로 만든 세계지도의 단점을 보완한 밀러지도가 보급되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세계지도의 예에서 보듯이 지도라고 하는 그림과 실제는 많이 다르다. 즉 세계지도 안의 실상의 세상에서 티끌보다 작은 인간이 바라보는 시점의 세상과 세계지도 밖에서 그림으로 세계지도를 바라보는 전지적 시점에서 바라보는 가상의 세상은 전후가 뒤바뀜에 따라 좌우가 우좌가 되는 시점의 왜곡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시점의 왜곡이 불가피한 수학적 가정의 세계라는 것을 일단 인정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즉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의 본질이 모든 기준을 전지적 시점에 고정해 놓으면 수학적 가정에 기반한 모든 세상의 시점은 전면부정 해야 한다는 결론 밖에 나올 게 없다. 이러한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섭리를 고집하여 원리를 부정하면 세상은 수습할 수 없는 악세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처럼 인류는 끝없는 시점의 변화를 통하여 문명을 일으켰고 선세와 악세가 교차되는 시점의 주객이 전도되면서 일 개인의 시점이 가족의 시점이 되고 가족이 부족으로 부족이 국가로 국가가 지구촌으로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전지적 시점에 대한 갈급함이 싹트게 되었고 인지혁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전지적 시점을 실현시킬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고 말과 글로 만든 문명은 비록 가상세계일 망정 이 갈급함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결국 문명을 통하여 우리 인류는 전지적 시점을 목표로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신을 만들기도 했다가 스스로 만든 신을 죽이기도 하면서 전지전능한 시점을 향해 나아가려 했던 것은 아닐까 깊은 의문이 앞선다. 그리고 마침내 7만 년 간의 인지혁명을 통하여 세상의 원리에 의한 개별적이고 주관적이며 상대적 시점을 마감하고 전 인류의 뇌를 아웃소싱하여 집적시킨 전지적 시점의 AI, AGI, ASI, 로 나아가려고 우리 인류는 첫발을 내딛고 있다. 기계와 결합된 전지적 시점의 차세대 인류의 탄생으로 세상의 원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두고 온 과거, 자연의 섭리마저 결합된 전지전능한 시점을 가진 존재의 출현에 설왕설래가 많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인류는 전지적 시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리라 희망찬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