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아 값졌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3시에 기상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첫차 시간에 관심이 없었던 탓에 지하철역에서 꼼짝없이 30분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 또한 괜찮았다. 아무렴 즐거운 날인데 이 정도쯤이야. 좌석 지정을 하지 않아 비행기에서 떨어져 앉았던 것도, 복잡하디 복잡했던 입국 과정도, 열차와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며 호텔로 갔던 험난한 여정도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될 터였다.
풍파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상해에 발을 디딘 지 2시간쯤 지났을까. 몸이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컨디션 떨어지는 수준이 아님을 느꼈지만, 애써 부정했다.
첫 끼니로는 가장 기대했던 ‘상하이 그랜드마더 레스토랑(上海姥姥家常饭馆)’의 동파육을 먹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한국어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나는 차라리 한국에 있다고 믿고 싶었다.
“내일 한국 가는 비행기 알아보자.”
오랑우탄의 말에 이곳에 오기까지 우리가 기대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바로 전날까지도 여행에서 입을 옷을 맞춰보며 설렜던 우리 생각에 아픈 내가 원망스러웠다.
관광은 접고 호텔로 들어와 소파에 쭈그려 앉았다. 축축한 침대에 도저히 나를 맡길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축축해진 오랑우탄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지근한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몸도 안 좋은데 찬물을 마시기는 좀 그렇긴 개뿔 중국은 찬물 안 판다.
저녁 무렵까지 수분 보충과 쪽잠 자기를 반복하면서 몸 상태가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올라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고의든 아니든 나로 인해 둘이 계획한 여행을 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심신에 안정이 찾아오자 그제야 중국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유럽풍 건물들을 지나 다소 연식이 느껴지는 백화점을 구경하고, 관광객이라곤 단 한 명도 없을 듯한 거리를 걷고, 즉흥적으로 들어간 작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것은 꽤나 근사한 일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택시를 타고 와이탄으로 향했다. 삐까뻔쩍한 상해의 야경을 구경하며, 오랑우탄과 기사님의 대화에도 간간이 웃음으로 호응했다. 물론 알아듣진 못했다. 한 단어도. 그냥 혼자 웃은 거임.
와이탄의 아저씨들은 한 명 걸러 한 명꼴로 배를 까고 있었고, 나는 동방명주만을 보러 중국에 온 사람처럼 시선을 고정했다. <겨우, 서른>에서만 보던 와이탄에 내가 와 있다니.
‘여기가 바로 쉬환산 이 개ㅅ..’
감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