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즐긴 하루
오랑우탄은 가끔 두세 마디만으로 나의 삔또를 상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밥 뭐 먹을까?”
“...”
“언제 씻을 거야?”
“...”
“(TV를 보며)저 사람 뭐라고 하는 거야?”
“...”
상해에서 맞은 두 번째 아침이 그러했다. 그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 후 나 역시 입을 닫았다. 그는 멀티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축축한 침대 이슈로 소파에 쭈그려 자 예민해진 것이 분명했다. 자연스레 우리의 아침 식사는 호텔 주변 노포에서 전날 사둔 주전부리로 변경되었다. 멀찍이 떨어져 ‘릴리안 베이커리’의 박스를 열었다. 차갑게 식은 에그타르트가 마치 내 기분을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가차 없이 집어삼켰다.
그가 ‘HORIGUCHI COFFEE(堀口咖啡)’에 가자고 했다. 드라마 <겨우, 서른>에 나온 것으로 유명한 카페였다. <겨우, 서른>은 내가 몇 번씩 재탕할 만큼 즐겨 본 드라마이고, 내가 중국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많은 지분을 차지하며, 오랑우탄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느새 평화를 되찾은 우리는 약 한 시간 동안 커피 두 잔과 조그만 조각 케이크를 먹으며 5만 원을 불태웠다.
이름과 도무지 매치 되지 않는 ‘신천지(新天地)’는 상해 여행 중 가장 예뻤던 곳 중 하나다. 우리는 마치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거리를 구경하다, 악랄한 더위에 못 이겨 백화점으로 피신하기를 반복했다.
이후 ‘티엔즈팡(田子坊)’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인들의 선물을 골랐다. 우리를 가장 흥분하게 만든 선물은 차(茶)도, 술도, 오이맛 감자칩도 아니다. 마오쩌둥 자석이다. 우리는 일말의 고민 없이 자석을 종류별로 구입했다. 만족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쓸모없는 선물 교환식 1등은 우리가 틀림없다.
해가 질 즈음에는 와이탄에서 바라보았던 동방명주를 가까이서 찍먹했다. 수많은 인파와 무더위에 원형 육교를 다 돌기도 전 이미 마음은 ‘예원(豫园)’을 향했다. 낮에만 예원에 가봤다는 오랑우탄은 그곳의 야경을 궁금해하곤 했다. 퇴근 시간대의 험난한 도로를 뚫고 힘겹게 눈에 담은 예원의 야경은 예술이었고, 그 앞에서 먹은 마라반은 더 예술이었다.
예원을 빠져나와 곧장 택시를 타지 않고, 주변 거리를 걸었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곳이었다. 아파트야 한국에서 수없이 봤지만, 외국에 나와서 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 베란다에 있는 아파트 주민을 보자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이 떠올랐다. 저 사람은 얼마나 부자일까? 어떤 직업을 가졌을까? 지금 길 가는 외국인이 본인 보면서 이런 생각 하는 거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