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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넛 Sep 20. 2024

우리의 첫 상하이 4

중린이로 거듭나다

‘주가각(朱家角)’을 방문하기로 결정한 후, 가장 먼저 나는 수향마을의 열악할 화장실을 걱정했다. 오랑우탄은 ‘불편할 것 같으면 안 가도 괜찮다’라고 하면서도 ‘<겨우, 서른>에 나온 왕만니의 고향 마을 같은 곳’이라는 설명에 힘을 주곤 했다.


‘우리 만니 언니의 고향 마을? 그건 못 참지’


나룻배를 타고 아름답게 늘어선 중국 전통 수상가옥을 만끽하는 순간,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룻배는 수향마을에서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의 정점이며, 이로써 우리는 주가각에 온 사명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절대 이곳 화장실에 가기 싫어서라거나, 쪄 죽겠어서가 아니었다. 정점을 찍은 우리는 이만 물러나기로 했고, 그렇게 한 시간 남짓한 구경을 위해 택시 안에서 왕복 세 시간을 태운 사람들이 되었다. 부르주아 같은 행실이 못내 찝찝했지만 괜찮았다. 온전히 즐겼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므로.


제대로 된 끼니라곤 아침에 먹었던 훈툰(馄饨)이 전부였던 우리는,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먹통인 배달 어플과 사투를 벌였다. 결제수단을 포함한 이유 불문의 각종 먹통은 중국 여행 중 흔히 맞닥뜨릴 수 있는 장애물이다. 다만 해결 의지보다 굶주림이 컸던 관계로 가까운 식당으로 달려가 꿔바로우(鍋包肉)와 량피(凉皮)를 흡입했고, 이후 호텔로 돌아와서야 배달 어플 문제를 해결했다. 확인차 헤이티(喜茶) 밀크티도 주문해 보았다. 문제없었다.


상해에서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마지막 저녁 식사였던 ‘헌지우이치엔양로우촨(很久以前只是家串店)’을 꼽겠다. 가히 경이로운 웨이팅을 자랑하는 이 양꼬치집은, 장담컨대 유튜브에 올라온 거의 모든 한국인의 상해 여행 브이로그에 등장한다. 원격 웨이팅도 가능하지만, 거한 점심 식사로 배가 고프지 않았던 우리는 배짱으로 29팀을 기다렸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입장 멘트를 들은 나는 중국어로 0부터 10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맛, 분위기, 서비스 중 뭐 하나 빠지지 않았던 이곳은 ‘기대감은 웨이팅에 비례해 높아진다’라는 우리의 신념을 깨주었다. 중국에 온 이후 처음 마신 소주도 감흥을 더했다. 편의점에서 중국 술을 사서 맛보기도 했지만, 나는 확신의 소주파라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점점 많아지는 주변의 한국인들과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마치 그들도 그런 것 같았다. 취한 듯했다.     


우리가 여행했던 8월은 파리 올림픽이 한창이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사람들이 스크린으로 탁구 결승을 보고 있었다. 모두 중국 선수였지만 우리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내심 우리나라 선수를 꺾고 올라간 선수가 실력을 발휘해주기를 바랐는데, 후에 안 사실로는 우리가 응원한 상대 선수가 중국에서 인기 있는 선수라고 한다. 뭐, 어쩔 테냐.     


한국에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한 톨의 후회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모든 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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