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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누 Aug 30.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 결점 없는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

엄태화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봤다.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두 번 본 건 상당히 오랜만이다. 필요 없는 장면이 하나도 없이 깔끔했고, 몰입도도 상당히 좋았다. 세상이 망하고 나서부터 영화가 시작하는 것도 좋았다. 민성(박서준)이 동료를 구하지 못하는 장면이나, 영탁(이병헌)이 죽은 가족의 손을 잡는 장면같이 잠깐씩 등장하는 재난씬도 억지스럽지 않게 담백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욕같이 보이는 민성의 손하트도 좋았고, 사람들의 이기심을 바둑알로 표현한 것, 래미안이나 롯데 캐슬 같은 아파트 브랜드의 광고처럼 연출된 황궁 아파트 소개도 좋았다.

난 이 결점 없는 영화를 비판해 보려 한다.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매불쇼에 엄태화 감독이 나온 편을 봤다. 거기서 엄태화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감독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에 돈을 투자하신 분들한테 회수를 시켜주는 것도 의무이다 보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감독은 영화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개인 재산을 지켜줄 의무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황궁 아파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생명과 직결된 개인 재산을 지키려 발버둥 치는 사람들. 그들을 영화는 인간의 이기심의 극치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명화(박보영)가 황궁 아파트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그들을 옹호하긴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그 대사가 가장 설득력이 없다. 뜬금없는 대사였다. 그렇게 악마 같던 사람들이 갑자기 평범해졌다.


황궁 아파트를 가장 먼저 탈출한 민성과 명화. 민성은 죽었지만 명화가 도착한 곳은 주인 없는 집에 모두가 평등하게 들어와서 먹고사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 거기서 명화는 이런 답을 듣는다. “살아있으면 그냥 사는 거지,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봐요?”

민성과 명화.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꿈만 같은 결말에 이 영화는 너무 쉽고 나이브하게 도달했다. 모두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건 이 영화처럼 말도 안 되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 누구도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집에 들어가 살 수 없는 현실에,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건 뭔가?


모든 땅이 국가의 소유인 사회주의 국가에서조차, 높은 부동산 가격과 도시의 높은 임대료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세상이다. 중요한 건 영화 속 황궁 아파트의 시스템을 어떻게 부술 수 있냐는 것이다. 영화 속 황궁 아파트는 자원이 없어서 자멸했지만, 현실에선 모두가 부러워하는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자원을 가졌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너무 좋은 사진.

황궁 아파트는 현실과 정말 닮아 있다. 일한 만큼 가져가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신의 가족들만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주의, 투표로 리더를 뽑는 민주주의. 이 견고한 탑들을 어떻게 무너뜨릴지 정교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인간은 원래 사악해.”이다. 명화의 마지막 대사 하나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너무 쉽게 내려버린 결론처럼 말이다.


9월 3일 일요일 20시, 이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유튜브 라이브가 있을 예정입니다.

링크 : https://youtube.com/@BINU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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