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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ca Jan 16. 2024

굴 소스 병을 던진 여자 1

 후덥지근한 습기가 올라오는 지하도로 바쁘게 내려가는 은주의 에코백 안에는 3주 전 구입한 500 그램짜리 굴 소스 한 병이 들어 있었다. 모임에 나갔다가 모임장소 근처 마트에서 구매한 것이었다. 새로운 브랜드의 마트를 구경하던 은주는 마침 굴 소스가 거의 다 떨어져 간다는 사실이 생각났고 3,780원이라는 가격이 꽤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저 없이 소스 병을 집어 카트에 넣었다. 하지만 소스를 구입한 다음날 은주는 전단 세일 중인 집 앞 마트에서 같은 용량의 굴 소스를 2,870원에 팔고 있는 걸 발견했다. 다행히 먼저 산 굴 소스는 개봉 전이었고 유통기한도 꽤 길었기 때문에 모임장소에 다시 가는 날 바꿔야겠다는 계산이 섰다. 


 은주는 용량이 같은데 1,000원에 가까운 가격 차이가 나는 소스를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더 비싸게 산 굴 소스가 기존에 먹던 것처럼 프리미엄 라벨이 붙어 있는 차이라도 있었다면 은주는 바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먼저 산 굴 소스 병에서 프리미엄 라벨은 발견할 수 없었고 굴 추출물 농축액 함량의 미세한 차이는 어차피 은주가 느낄 수 없는 영역이었다. 유통 기한마저도 먼저 산 소스가 더 적게 남아 있었다. 또 어차피 모임을 가기 위해 그 동네를 가야 하니 일부러 차비를 들이는 일도 아니었다. 소스를 환불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이렇게나 많았다.    

 모임에 가기 전 그 마트에 들러 영수증과 카드를 보여주고 굴 소스를 환불한다는 것이 은주의 계획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늘어선 긴 줄 속에서 은주는 구매했던 카드와 영수증이 지갑 속에 잘 있는지 한번 더 확인했다. 퇴근길의 9호선은 역시나 만원이었다.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몇 배는 많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에어컨 바람조차 닿지 않는 비좁은 틈새에서 서로의 끈적임을 버텨내야 했다. 내내 집에 있다 나온 은주도 퇴근길에 지친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니 마치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직장인처럼 금세 피로감을 느꼈다. 하염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에 치이며 당산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서둘러 내리기 시작했고 손에 끼고 있던 은주의 에코백은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움직임에 휩쓸려 어느새 닫히려는 문 사이에 위태롭게 놓이게 되었다. 


“열차출입문 닫습니다, 출입문 닫습니다, The doors are closing. 치이익…”


 닫히려는 문틈에서 재빠르게 에코백을 사수해 낸 은주는 마침 문 옆에 난 빈자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막 그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방금 열차에 올라탄 여자가 재빨리 자리를 차지했고 예상치 못한 엉덩이 공격에 은주는 휘청거리며 에코백을 놓쳤다. 에코백은 원심력이 붙어 그만 맞은편에 앉은 남성의 무릎 위로 날아가고 말았다. 정확히는 그의 무릎 위에 있는 휴대폰 화면 위였다. 휴대폰 속 야구경기에 집중하던 남성은 갑작스러운 은주의 굴 소스 에코백 공격을 피하지 못했고 그의 핸드폰은 ‘퍽’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재빨리 에코백을 들어 굴 소스의 상태를 확인한 은주는 에코백에 쌓인 유리병에 어떠한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는 걸 발견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휴대폰 액정에 급작스런 피해를 입고 흥분한 남성은 은주가 인생을 살며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야! 이 ××, 뭐 이런 × 같은 ×이 ××, 이게 뭐 하는 ××이야! 이 ××아!”    

  

 첫 단어를 들은 후부터 은주는 다리가 떨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남자는 때릴 듯한 기세로 은주 앞으로 달려들며 발을 굴렀다. 누군가 광분한 남자를 신고 했는지 안내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의 시선은 남자와 은주에게 집중됐지만 직접적으로 말리는 이는 없었다. 위협을 느낀 은주는 굴 소스가 든 에코백을 손에 말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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