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한 단계의 관문이 있다. 바로 에세이 자기소개서 작성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면접을 봤지만 이제는 에세이로 대체하고 있다. 말이 아닌 글로 면접을 보는 방식이 생각해 보면 교육원의 취지에 더 맞는 방식이 아닌가 싶긴 하다. 에세이의 주제는 이런 것이었다.
'어떤 드라마 캐릭터에 가장 감명을 받았으며 그 이유, 어떤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자기소개서.'
그동안 본 드라마는 A4용지 한가득 앞뒤로도 적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스토리에 집중했지 캐릭터에 그렇게까지 집중하면서 본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량도 1,330자로 짧기 때문에 부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맘 잡고 쓰려니 그 수많은 드라마 중에 과연 내가 가장 감명받은 캐릭터가 무엇이었나 너무나 고민이 됐다. 그리고 이걸 자기소개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선 결국 내가 진정 이해할 수 있었던 캐릭터를 생각해 내야 했다.
몇 날 며칠의 고민 끝에 내게는 마침내 단 하나의 캐릭터가 떠올랐다. 김혜수 배우가 열연했던 '미스 김'이란 캐릭터였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에세이를 쓰던 1년 전의 나는 10년 간의 비정규직 교사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 나가떨어져 있었고 나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잘못된 제도 속에 결국은 내 노력과 열정이 이용당했다는 그런 슬픈 생각들로 분노하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이 10년 전의 작품이 불현듯 어느 날 아침 떠올랐던 것이다.
연수반을 다니고 있는 지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가 많다. 내가 생각한 캐릭터나 스토리, 인물들에게서 신선함을 발견하지 못할 때, 여주와 남주의 감정선이 정상인이 아닌 것처럼 급하거나 로봇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문득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랜만에 다시 교육원 에세이를 읽으며 1년 전 그때의 내 마음이 다시 되어 본다. 다시 한번 그때의 다짐을 되새기며 봄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