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더 기묘한 미술관 Review
시간을 들여서 거대한 미술관을 찾는 일도 즐겁지만, 가끔은 아늑한 침대에 누워서 미술 작품들을 향유하고 싶기도 하다. 물론 작품 자체에만 집중하고 싶다면 화가의 섬세한 붓 자국을 눈에 담는 편이 올바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작품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순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화가가 걸어온 삶의 궤적이나 미술 작품에 얽힌 사연이 작품만큼이나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 어떤 화가는 그림에 유언을 남겼고, 어떤 그림은 너무 잘 그려져서 불행을 불렀다.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었던 화가의 비밀을 간직한 그림도 있다.
그리고 여기, 정작 화가의 지인들은 몰랐을 비밀을 몰래 담고 있는 책이 있다.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 진병관이 명화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번화가에서 빠져나오다가 들어가게 된 골목에서 예쁜 카페를 발견한 적이 있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나만의 공간을 소유한 기분이 퍽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번에 만나게 된 책도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전작인 「기묘한 미술관」에서는 대중적인 작품들을 주로 다뤘다면, 「더 기묘한 미술관」에서는 흥미롭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만 공유하는 특별한 이야기들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책이다
가장 흥미를 일으켰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마담 X의 초상화」이다. 검은 드레스와 대비되는 피부는 창백하고, 보석으로 만든 어깨끈과 잘록한 허리는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완성작과는 달리 살롱전에 출품된 그림에서는 한쪽 어깨끈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노출이 심하다며 불쾌감을 표현했고, 창백한 피부가 죽은 사람 같다거나 여성이 아닌 그리스 신화 속의 기이한 짐승 같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어느 비평가는 옷을 입은 것보다 더 외설스러운 그림 같다고 포르노그래피 취급까지 했다.
그림 속 주인공이 사교계에서 얼굴이 알려진 결혼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파리에서는 결혼한 여인이 성적인 어필을 하는 것이 용인되지 않았다. 결국 사전트는 논란의 중심에 있던 어깨끈의 위치를 수정했다.
그리고 지금, 거센 비난을 받던 작품은 '메트로폴리탄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며 미국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전시되고 있다. 무관심을 넘어서 비난을 받던 작품이 영광스러운 명성을 얻은 상황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짜릿하다.
2021년, 파리에 살면서 언제나 갈 수 있었던 미술관이 폐쇄되자 저자는 상심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기묘한 미술관」은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다.
공간감에 한계가 있는 '책'을 최대한 활용해서 미술관의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더 기묘한 미술관」은 총 다섯 개의 관으로 나뉘어 있다. 1관은 세상과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 작품들을 다룬 운명의 방, 2관은 어둠과 그늘로써 밝고 아름다운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작품을 모은 어둠의 방, 3관은 시대를 앞서나간 화가와 파격적인 작품들로 가득 찬 매혹의 방, 4관은 현실과 예술, 삶과 죽음 등 그 경계에 선 작품들을 소개한 선택의 방, 마지막 5관은 미술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선정한 기억의 방이다.
개인적으로는 매혹의 방에 들어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체적으로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들의 향연이었기에 책장을 덮는 순간에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이별 후에 다시 만남이 찾아온다고 믿는. 차후에 더더 기묘한 미술관이 나오길 바라본다.
*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티켓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