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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Feb 27. 2024

유치원 졸업식에서 펑펑 울었다.

더 아픈 손가락이 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었을 때 덜 아픈 손가락 없다.” 흔히들 이런 표현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 공평함을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아이를 낳기 전에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모든 자식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다른 성격의 두 아이를 낳고 나니
더 예쁜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더 아픈 손가락은 첫째였다. 남자아이지만 불안이 깊고 내향적이고 예민한 아이, 주관과 취향이 확고하지만 내성적이라 밖에서는 표현하지 못하고 가정 안에서 감정의 부스러기들을 툭툭 떨어뜨리는, 한 번씩 폭발하는 감정을 부모 앞에서 여과 없이 쏟아내는 첫째 아이는 내게 늘 더 아픈 손가락이었다. 서툰 엄마로 첫째 아이를 힘겹게 키우는 내게 육아는 매일의 감정과 체력을 모두 소진시키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고, 모든 에너지를 아이의 감정과 평안을 지키는 데에 몰입해야만 겨우 평범에 가까운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된 것은 둘째를 낳고 난 후의 일이었다.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순하고 예뻐서 산부인과 간호사들에서 조리원 식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사랑을 받는 아이였다. 아이를 낳고 바로 복직해 시부모님 손에 키웠음에도 굳은살 하나 없이 밝고 명랑했다.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 바라기가 되어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아이를 안고, 업고 일을 하면서도 생글생글 까르륵 터지는 아이의 웃음을 지켜보는 것은 나의 큰 기쁨이었다.


커 가면서는 오빠의 짓궂은 장난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해주지 못한 안정적인 애착까지 첫째에게 형성해 준 아이였다. 워킹맘으로 일하며 안 그래도 덤벙대는 성격에 내 업무와 아이들 스케줄, 준비물에, 공부까지 챙기려 힘든 일상이었지만 둘째만큼은 자신의 준비물이나 일정을 스스로 챙기고 나에게 일러주어 그 몫의 피로를 덜곤 했다. 알파벳도 한글도 오빠를 가르치는 엄마의 어깨너머로 스스로 깨쳐 한글책과 영어책을 스스로 척척 읽어 나가는 아이였다. 그 아이의 예쁨으로 버티고 선 육아의 순간들이 많았다.


이토록 예쁘고 똑똑한 아이이지만 아픈 손가락인 아들이 혹여 서운함을 느낄까 남들에게 드러내 놓고 자랑 한 번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자기 것을 잘 챙기는 똑 부러진 아이이니 자연히 신경이 덜 쓰였고 스스로 해 나가는 모습을 기특하게 여기고 칭찬하는 일이 있다 해도 우리 집의 메인 화두는 늘 아들이었다.


그렇게 자란 둘째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한다. 의젓한 자세로 졸업 의상을 입고 등장하여 자기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이만큼이나 커서 학교에 가는구나 생각하니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에 눈물은 끝이 없이 흘렀다.




아가야. 태어날 때부터 넌 나의 기쁨이자 행복이었어.

언제나 오빠보다 잘하고 믿음직스럽다고 여겨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가끔 엄마는 신이 모자란 나를 위해 이렇게 예쁜 우리 딸을 보내준 게 아닐까 생각해.

모자라기만 한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네가 늘 이야기하듯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자.

함께 많은 시간 보내며 예쁜 추억을 나누고 서로에게 지금처럼 힘이 되어 주자.


졸업을 축하해.

앞으로 펼쳐질 너의 날들을 응원해.

이렇게나 예쁘고 똑똑하고 따뜻한 네가 살아나갈 시간이, 네 앞에 펼쳐질 눈부실 세계를 기대해.

그리고 기억해.

너의 모든 날들에 주인공은 너라는 걸.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아닌 너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엄마가 더 노력할게.

더 크고 튼튼한 나무가 될게.

더 많은 사랑을 줄게.  


그리고 약속해, 언제고 너를 위한 힘을 남겨 놓을 것을.

소모되는 감정의 둑을 막아 너의 몫으로 나의 일부를 남겨둘게.

글을 쓸 때도 일을 할 때도 오빠를 돌볼 때에도 나의 일부는 너의 몫이야.


날 선택해 준 너에게 감사해.
난 언제나 기꺼이 너의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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