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이 오기 전에 최선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3월부터 신설 고등학교에 발령받아 10년 만에 고등학생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생활지도의 비중이 수업 보다 다섯 배쯤 많았던 중2병의 산실인 중학생들에게서 벗어나서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고 드디어 인격체의 반열에 오른 학생을 다시 한번 가르치게 된다니!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다.
- 아이들 생기부에 도움이 되면서도 재미있는 다양한 학급 특색 활동을 기획해야지!
- 학급 문고를 만들어서 아이들의 독서 활동을 점검하고 원하는 전공분야에 대한 양서로 탐구보고서를 작성하게 해야지!
-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클 테니 담임시간에는 5분 명상을 가져보면 어떨까?
- 학습 플래너를 쓰게 해서 일주일 단위로 점검하면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나씩 수첩에 적어 내려간 위시리스트들이 한가득 이어진다. 대망의 3월 4일 담임 오티 시간에 사용할 ppt를 공들여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 새 학기는 신설 학교의 말도 안 되는 대혼돈 속에서 기획했던 일들은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하나도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없는데 끝도 없이 이어지는 회의에 참여하고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번복되는 전달 사항을 전하고 각종 서류를 취합하며 수업 준비를 해나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전쟁과도 같았다.
하지만 야심 차게 두 발로 걸어 들어온 고등학교가 아니냐! 그 와중에도 나름의 진심을 다해 하나씩 하나씩 업무와 학급 운영, 수업을 처리해 나갔다.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교사가 8시 이전 퇴근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새벽달을 보고 출근하여 별을 보고 퇴근하는 일과를 반복해야만 했다. 집에 돌아오고 난 이후에는 아이들의 아침 등교에서 저녁밥 먹이는 일까지 도맡아 독박 육아를 이어 가고 있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남은 에너지를 싹싹 긁어 육아에 탈탈 털어 넣고서 쓰러지듯 잠이 드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갈되어 가는 나날 속에서도 순조롭지 않은 직업 생활에의 아쉬움과 엄마 없는 일상을 유튜브로 채우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 열심히 읽고 써오던 브런치에도 충실할 수 없다는 상실감까지… 어느새 나는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잃고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제저녁 예정된 침몰처럼 몸에 이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오한이 퍼져 나가고 피부 표면에 스치는 작은 감각에도 칼에 베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뱃속에서도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고통이 시작된다. 급히 열을 재어 보니 39도. 아이들 용으로 구비되어 있는 해열제를 바꿔 먹어 가며 아침까지 기다렸다. 큰 병원에 갈 여력도 없어 집 앞 병원에서 급하게 진료를 받으니 염증 수치가 정상 범위의 8배에 달하고 백혈구 수치도 비상이란다. 입원을 청하는 의사에게 그럴 수 없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링거액을 주렁주렁 달고서 주사실에 누워 있으니 스스로의 미련함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온갖 일들에 마음과 체력을 쓰며 동동거린 것은
과연 학생들을,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을까?
스스로의 유능함에 도취된 내가 벌이는
불안과 성취를 넘나드는 자작극은 아닐까?
단언컨대, 누군가의 희생 없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내가 나서지 않을 때에 학생들은 조금 더 영리해지고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인격체로 자라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수축된 혈관 탓에 몇 번이고 찔러 넣은 바늘 끝을 보며 새삼 마음을 비워본다. 내 욕심이라는 긴 지렛대 끝에 스스로가 인정하는 모습의 이상적인 자아 상을 세워 두면 이편에 서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나는 현실을 널뛰듯 살아야만 한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들은 흘려보내고 신기루처럼 감추어진 저편의 세계에만 온통 마음을 둔 채로…
집에서 3분 거리에 벚꽃으로 유명한 산책로가 있음에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몸상태로 이 봄의 절정을 허망하게 떠나보내는 내 자신을 돌아보며 크게 한 번 외쳐 본다.
허둥지둥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고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