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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Apr 22. 2024

끝을 보고 싶은 마음

브런치북에 대한 단상


연재 중인 브런치북이 세 개가 되었다. 올해 초 신년 목표로 브런치북 작품 세 개 탈고를 목표로 설정했을 때만 해도 이럴 작정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연재 중인 작품들을 하나씩 탈고하고 그때 그때 하고 싶은 이야기들, 열정을 가진 분야에 대한 나름의 고찰들을 묶어 내어 브런치북을 완성해 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시작했던 여러 작품들을 마무리 짓지도 못한 채 브런치북 세 개를 매달고 탈고라는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내가 미련해 보여 쯧쯧 혀를 차다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을 목적으로 이런 글을 적는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직후 작업에 들어간 <중학생도 때로 글을 읽습니다>는 나와의 격렬한 싸움 끝에 올해 3월까지 매주 놓치지 않고 연재를 이끌어 17화까지 달려왔다. 뛰어난 작가들에게는 17화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겠지만 의욕만 가득한 프로 습작러에게 매주 돌아오는 마감일은 실로 나와의 싸움이었다. 때로 마감일과 중요한 업무가 겹치는 날에는 밤 11시 50분이 넘어서야 허벅지를 찔러가며 글을 발행했고 때로 글이 유독 써지지 않는 날이면 컴퓨터를 끌어안고 울고 불고 짜증을 부리다가 성에 차지 않는 글을 냅다 발행하고는 부끄러운 마음에 홍당무가 되어 버린 날들도 있다. 잠이 오지 않는 하얀 밤이 찾아오면 브런치북 가득 담겨 있는 현실의 나답지 않은 형이상적이고 화려한 문구가 떠올라 이불을 차올린 적은 얼마나 많았는지, 애정하는 이불에 무릎 자국이 남을 지경이다.


애증의 브런치북


어렵게 이어온 연재는 3월이 되며 정신 없이 바쁜 현실에 밀려 잠정적으로 휴식 상태에 들어갔다. 계속하는 마음은 그토록이나 어려웠는데 내려놓는 과정은 이토록이나 쉽다니 자괴감이라는 깊은 물속에 잠겨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심정이다. 수요일 연재를 앞두고 월요일부터 지새우던 고민과 걱정을 떨치니 편안한 일상에 마음은 한없이 가벼워져 날아갈 듯하다가도 끝을 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스스로를 괴롭히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왔던 지난 과정에 대한 미련으로 마음은 소란스럽다. 노력하는 만큼 인기가 있었다거나 유독 내 글을 기다리는 열혈 독자가 응원해 주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뿌듯함과 스스로를 괴롭힌 대가로 얻었던 높아진 자존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4월도 하순이다. 이제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은 세 발자국을 조심스럽게 내딛을 때인가 보다.


<쑥쑥 자라개>는 골든 레트리버를 키우는 과정에서 겪었던 좌충우돌 반려인의 성장기를 다룬 브런치북이다. 운 좋게도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즐거워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며 우리 집 강아지를 예뻐해 주셔서 그토록이나 바라던 브런치 대문에도 올라보고 브런치북 1등도 차지하게 한 효자 작품이다. 그러나 인기를 얻게 되니 서툰 반려인인 내가 반려인들의 마음을 대변할 자격이 있는가, 혹여나 글을 읽고 큰 개에 대한 선입견만 부추기는 것은 아닌가 두 세 배 강화된 자기 검열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글은 납을 메단 추처럼 무거워지고 내 안에서 북적되던 글 쓰기의 즐거움은 줄어들밖에.


글쓰기의 즐거움과 마감의 압박,
모두가 공감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과
한없이 가볍더라도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적인 글을 쓰고 싶다는
모순된 욕망 사이에서
나는 없는 시간을 쪼개어 고민까지 한다.


이 시간에 한 줄 더 쓸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테지만 그러면 이런 글도 쓸 수 없게 될 것이고, 내가 그런 추진력을 가졌더라면 이미 프로 작가이지 않겠냐는 것이고, 답도 없는 글쓰기의 미로에 갇힌 쪼무라기 작가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미로에 버둥대는 나를 집어던진 사람이 나인 탓에 원망도 못하게 된 처지이지만. 글쓰기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겠다.

모든 짝사랑의 대상이 그러하듯이 그는 내게 잔인하리만치 혹독하고 내가 가진 가장 암울하고 못생기고 게으른 모습에 좌절케 하다가도 때로 한없이 고양되는 마음을 붙잡을 길 없어 하늘을 붕붕 날아오르게도 한다. 작가라는 이름을 달게 된 초보 습작러인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 모두 브런치라는 시스템 속에서 글쓰기의 진정한 매력을 알아버렸고 스스로의 가장 못난 모습과 가장 아름다운 모습 속에서 희비하며 계속해서 써 나가는 것 말고 남은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이토록 괴로움에 발버둥 치면서도 나를, 우리를 글 쓰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글쓰기 초반에 매일매일 조회하며 가슴 졸이던 통계수치도, 이웃들이 남겨둔 아름다운 마음도 아니다. 관성처럼 인박혀 버린 글쓰기 과정의 괴로움과 탈고의 후련함, 스스로를 채우고 때로 깎아내리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이 지난한 과정에 우리는 중독된 것이 아닐까?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과 고난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빈 종이 한 장을 마련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이야기들을, 글이 죽어버린(책의 사망이 선고된) 이 혹독한 상황에서, 쓰는 사람으로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는 서툰 우리를, 나는 사랑하게 되었고 기꺼이 응원하게 되었다.


계속 살아남아 끈질기게 써 주기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글쓰기의 세상에서
내내 고민하고 비로소 충만하기를.
글 쓰는 모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감히 새로운 브런치북 연재를 결정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장님, 마무리 좀 부탁드려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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