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J형 교사의 프로 일잘러 탈출기
눈물에는 이름이 있다.
슬픔, 분노, 부끄러움, 질투, 사랑, 감동… 그리고 간혹 그것은 강한 주장의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그날 하필 부장님 앞에서의 눈물은 서러움이었고, 분노였고, 부끄러움이었으나 날 좀 봐달라고, 여기서 이렇게 나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대상 앞에서 사적인 감정에 펑펑 울어버린 날. 공감 능력이 없는 그는 퇴근 가방을 내려 놓고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얼굴을 붉히고 서 있었고, 나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원망하며 널부러진 감정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이 일을 맡은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도 이번 일로 대충해도 된다는 걸 좀 배우셔야죠.
이게 큰 교훈이 될 겁니다.”
어떻게 해야 수학여행을 대충 갈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조금 더 나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매뉴얼을 들여다보며 아이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새벽이 구겨진 종이처럼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위로의 탈을 쓴 무심한 말이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잘못은 나에게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마음에서 시작해 무릅 쓴 것이라도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몫이라면 현명하게 나누어 지자 설득하는 것이 진짜 능력일텐데 나는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6차 교육과정의 마지막, 30대 후반 40대 초입 나이의 우리는 늘 어딘가에 끼어 있는 세대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이에서, 꼬장꼬장한 선배들과 시원시원하게 일을 거절할 줄 아는 신인류 MZ 세대와의 사이에서 변한 것 같으나 쉽게 변하지 않는 세상과 마주하며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지나간 시대의 잔여물이자 새로운 시대의 마중물이 되기도 하는 우리는 어느 것 하나에도 확실하게 끼이지 못하고 번듯한 이름 하나 없이 '무릅쓰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무릅써야 하는 그 어떤 일도 혼자 해야하는 법은 없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라면 더욱더, 꼬장꼬장한 그에게도 차가운 그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때로 실망하고 때로 깨지겠지만 함께 해 달라고, 같이 걸어가 달라고 설득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혼자서 밤을 세워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부탁이고 설득이겠지만, 그 힘든 일을 해 내는 것에 진정한 성장의 시작이 닿아있다고 믿는다. 작은 도움과 격려들이 모여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부장님, 마무리 좀 부탁드려요."
요즘 나는 내려 놓는 것을 연습 중이다. 차마 힘들었던 이 말을 부러 조퇴하는 부장 앞에 늘어놓는 중이다. 함께 가 달라고, 그리하여 그 언젠가 우리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충고할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며 마무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나를 키워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