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마무리 좀 부탁드려요.(2)

파워 J형 교사의 프로 일잘러 탈출기

by 초희

눈물에는 이름이 있다.

슬픔, 분노, 부끄러움, 질투, 사랑, 감동… 그리고 간혹 그것은 강한 주장의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그날 하필 부장님 앞에서의 눈물은 서러움이었고, 분노였고, 부끄러움이었으나 날 좀 봐달라고, 여기서 이렇게 나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대상 앞에서 사적인 감정에 펑펑 울어버린 날. 공감 능력이 없는 그는 퇴근 가방을 내려 놓고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얼굴을 붉히고 서 있었고, 나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원망하며 널부러진 감정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이 일을 맡은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도 이번 일로 대충해도 된다는 걸 좀 배우셔야죠.
이게 큰 교훈이 될 겁니다.”


어떻게 해야 수학여행을 대충 갈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조금 더 나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매뉴얼을 들여다보며 아이 옆에서 꾸벅꾸벅 졸던 새벽이 구겨진 종이처럼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위로의 탈을 쓴 무심한 말이 진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잘못은 나에게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마음에서 시작해 무릅 쓴 것이라도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몫이라면 현명하게 나누어 지자 설득하는 것이 진짜 능력일텐데 나는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6차 교육과정의 마지막, 30대 후반 40대 초입 나이의 우리는 늘 어딘가에 끼어 있는 세대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이에서, 꼬장꼬장한 선배들과 시원시원하게 일을 거절할 줄 아는 신인류 MZ 세대와의 사이에서 변한 것 같으나 쉽게 변하지 않는 세상과 마주하며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지나간 시대의 잔여물이자 새로운 시대의 마중물이 되기도 하는 우리는 어느 것 하나에도 확실하게 끼이지 못하고 번듯한 이름 하나 없이 '무릅쓰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무릅써야 하는 그 어떤 일도 혼자 해야하는 법은 없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라면 더욱더, 꼬장꼬장한 그에게도 차가운 그에게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때로 실망하고 때로 깨지겠지만 함께 해 달라고, 같이 걸어가 달라고 설득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혼자서 밤을 세워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부탁이고 설득이겠지만, 그 힘든 일을 해 내는 것에 진정한 성장의 시작이 닿아있다고 믿는다. 작은 도움과 격려들이 모여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부장님, 마무리 좀 부탁드려요."


요즘 나는 내려 놓는 것을 연습 중이다. 차마 힘들었던 이 말을 부러 조퇴하는 부장 앞에 늘어놓는 중이다. 함께 가 달라고, 그리하여 그 언젠가 우리가 누군가를 위로하고 충고할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며 마무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나를 키워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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