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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Nov 14. 2023

가드니아 5

[단편소설] 2023 아르코 창작기금 선정작

 


 어르신 저희 이런 거 받으면 안 돼요.

 앳된 얼굴의 접수대 여직원이 완곡하게 거절했다. 

 왜, 이거 내가 너무 많이 만들어서 그래.

 경자는 웃으며 비닐 봉투 속에 든 걸 꺼내서 내밀었다. 하얀 꽃무늬 누빔천에 노란 레이스가 달린 냉장고 손잡이였다.


 저희 이런 거 못 받게 돼 있어요. 여기 일하는 사람들 커피 한잔도 못 받게 돼 있어요.


 여직원은 경자의 손에 들린 물건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거절했다. 경자는 무안해져서 돌아섰다. 

 구청 건물 지하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한산했다. 구청에서 연결해준 이곳에서 경자는 한 달에 한 번씩 들러 짧은 상담과 함께 가슴이 조여드는 증상에 대한 약을 받았다. 건강했던 그녀는 두 환자를 겪으며 고혈압과 관절염과 당뇨와 우울증을 얻었다. 경자는 이름 모를 약 한 움큼씩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연장하며 사는 느낌이었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두 종류였다.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똑바로 바라보거나. 경자는 몰래 사람들을 살폈다. 오가는 사람들의 어딘가 불안해 보이거나 경계하는 눈빛을 보며 경자는 저 사람은 어디가 아프고 우울할까 상상했다. 


 몸집이 큰 여자가 유치원 정도 나이로 보이는 사내애와 같이 앉아있었다. 머리를 감고 제대로 빗지 않았는지 물기에 젖은 머리가 어깨에 얼룩을 만들었다. 여자는 핸드폰에 정신이 빠져있었고 아이는 반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여자의 다리에 올려놓은 채 까딱까딱하고 있었다. 경자는 아이의 스타킹을 보며 아들과 함께 간 초등학교 소풍날을 떠올렸다. 새로 산 세라복 셔츠에 파란 멜빵 반바지와 흰 팬티스타킹을 입고 간 소풍에서 아들은 사라졌었다. 경자가 한참 후 아들을 발견한 곳은 공원 구석의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 가면 늘 아랫도리를 다 벗어버리는 버릇이 있던 아들은 평소대로 바지와 스타킹을 모두 벗었고 다시 입을 때는 도무지 순서가 기억나지 않았는지 이렇게 저렇게 입어보다가 결국 바지 위에 팬티스타킹을 덮어 신고는 나오지 못했다. 경자는 엉엉 우는 아이의 등짝을 모질게 내리쳤다.


 남편도 그날 모처럼 일을 쉬고 소풍에 왔다. 경자는 거짓말로 하루 뺀 미싱 공장과 옆에서 계속 툴툴대는 남편이 신경 쓰였다. 남편은 어제 팔다 남은 과일을 걱정하다가 공원 앞 장사치들이 모두 도둑놈이라고 욕을 했다. 그날 밤엔 자신의 동생들을 모두 집으로 불러들여 술판을 벌였다. 그들 형제는 새벽까지 노래를 부르다 엉엉 울었다. 불쌍한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형님. 우리도 한 세상 봐야지. 경자는 단칸방 구석에서 아들을 껴안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운 후 공장에 갔다. 


 상담사는 아들을 닮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들의 어릴 때 모습과 닮았다. 햇빛을 못 본 것처럼 하얀 낯빛에 동그란 안경과 기다란 손가락, 말할 때마다 한쪽만 올라가는 입꼬리는 아이가 화가 나서 삐죽대는 것 같았다.

 박경자 님은 뭘 좋아하세요?

 경자는 생각했다. 난 뭘 좋아하는가. 내가 뭘 말하면 앞의 남자에게 부끄럽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 중 부끄럽지 않은 것. 토마토 화채, 꽃무늬 인견, 일일 드라마. 여러 단어가 맴돌았다. 상담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자의 답을 기다렸다.

 난 좋아하는 거 없어요.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좋아하는 음식, 색깔, 가수 그런 게 다 있죠.

 상담사는 인내심 가득한 얼굴로 경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경자는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그럼, 살면서 제일 화났던 일은 뭐예요?


 경자는 가만히 생각했다. 정말 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난 적이 있었다. 그건 시어머니의 장례식 때였다. 시동생이 자신에게 흰 리본 핀을 주지 않은 것이다. 남편은 그런 시동생을 나무라지 않았고 경자에게 ‘네가 끝까지 모시지 않은 탓이다’라고 비난하며 경자의 입을 막았다.


 경자는 상담사에게 그런 얘기를 하기 싫었다. 오늘 아침에 제가 죽을 뻔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상담사는 손가락 새에 낀 펜을 돌리기 시작했다. 경자는 햇빛 한번 받아보지 않은 듯한 해사한 얼굴의 젊은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 왠지 화가 났다. 상담사는 가벼운 한숨을 쉬며 늘 하는 얘기를 꺼냈다.


 박경자 님은 공부를 해보시는 게 어때요. 요즘은 문해 교육이라고 어르신들에게 쉽게 글을 가르쳐줘요.

 나 글 읽을 줄 아는데요.

 읽으실 줄 모른다는 게 아니고요. 사람들도 만나보고 친구도 만들고 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거라는 얘기예요. 뭐든 배워보시면 우울감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경자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공부를 하면 가드니아의 뜻을 알게 될까. 치자꽃이 왜 가드니아인지 알 수 있을까.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 단어들이 내게로 들어오게 될까. 경자는 하고픈 말을 접고 다른 말을 꺼냈다.


 선생님 집에 족보 있어요?

 의아해하는 상담사의 얼굴을 보며 경자는 쾌감을 느꼈다.


 남편은 어린 시절 살던 시골집에 불이 났던 날 족보만 챙겨 나온 것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금붙이도 집문서도 다 두고 족보만 가지고 나왔다며 영웅담을 얘기하듯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며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얘길 반복했다. 아들은 말도 배우기 전부터 그 얘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그가 자랑할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라고 경자는 생각했다. 지나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남편은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것이었다. 진짜 지켜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한 채로 의무만 강요당한 사람들. 경자를 비롯해 같은 세월을 지난 많은 사람처럼. 그래서 경자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원망했다. 남편을 선택한 자신을. 어느 순간부터 경자는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은 큰 죄를 지어 벌을 받는 것이라고. 그 죄는 두고 갚고 갚아야 없어지는 것이라고.


 경자는 자신을 미워해야 할 때 남편과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던 날을 생각했다. 그날의 남편 얼굴은 아주 흐릿했다. 계절이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는다. 여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겨울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기억나는 건 그 날의 생생한 감정이었다. 남편은 경자와 짜장면을 같이 먹다가 불현듯 말했다. 당신만을 위해서 살겠다고. 예고 없이 닥쳐온 고백에 행복해지기보다도 경자는 무서웠다. 청혼을 거절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자는 자주 그 순간을 곱씹었다. 두 젊은이의 수줍은 얼굴이 드라마 속 그것처럼 낯설었다. 경자는 그 순간의 선택이 오직 자신에 의한 것이었음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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