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쇼핑

흥정의 이유

by 수정

서울에 동대문 쇼핑타운이 있듯이 내가 어릴 적 부산에도 서면 밀리오레라는 쇼핑몰이 있었다. 들어가면 옷들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진열되고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사방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초등학생쯤 엄마랑 나는 그곳으로 쇼핑을 자주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힘들었다.


엄마는 가격흥정을 할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가격이 정해져 있는데 왜 깎으려고 하는 거지? 크게 비싸지도 않은데 몇천 원 더 깎으려고 말하는 그 상황이 불편했다.


그곳이 힘든 이유는 또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옷을 사는 사람에겐 한없이 친절해 보였지만 구경만 하고 묻다가 가면 뒤통수 아프게 째려보았다.

그리고 자기들이 불러 세우고는 깎아달라고 하면 항상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걸 어떻게 깎아주냐? 는 느낌으로 쳐다본다. 어린 맘에 난 그곳이 무서웠다.



한 번은 엄마가 깎아달라고 하자

한껏 내려와 있던 눈과 눈썹이 위로 쏟구치며 안 팔아요!가세요!면박을 준 적이 있었다.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참나 왜 저래하며 뒤돌자 그 아줌마는 엄청 큰소리로 내가 무슨 거지들 도와주냐! 그렇게 손해 봐서 팔 거 같냐고 하며 화를 있는 대로 냈다.


지금의 나 라면 엄마랑 다시 돌아가서 그 아줌마에게 따졌을 텐데 그때는 엄마도 나도 서둘러 도망치듯 걸었고

엄마가 잘 못했다고 생각해서 나도 꼭 범죄자인 양 죄책감이 들었다. 그 기억은 쇼핑을 갈때마다 생각이 나 머리속에 박혀있었다.





다행히 내가 중학교 때부터는 교복을 입고 내 키도 멈추면서 밀리오레는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몇 달에 한번 용돈을 모아 친구들과 나이키나 아디다스에서 신발을 사거나 온라인 쇼핑몰인 옥션에서 값싼 옷을 골라 샀는데 엄마와 쇼핑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그 뒤로 수능을 치고 잠깐 센텀 신세계 백화점 지하 1층에서 식품 판촉 아르바이트를 한적 있는데 그때가 아마 처음으로 백화점 옷들을 직접 들어가서 구경해 봤던 거 같다.


사실 나에게 백화점은 아이스크림이나 푸드코트에서 저녁을 먹는 곳이지 정장, 가방, 신발, 옷을 파는 매장이나 명품관은 제대로 가보지도 못했고 얼마에 파는지 실감도 못 했었다.


나는 백화점의 옷의 가격 택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차림으로는 발 들이기도 걱정되는 1층의 명품관도 아닌 사람들이 적당히 있는 6층의 어느 여성복 매장이었음에도 내가 생각한 것에 10배 정도 되는 가격이었다.


그때 난 백화점이라는 곳은 이런 곳이구나 하며 깨달았고 그 현실감만 생긴 건 아니었다.





왜 우리는 밀리오레만 갔는지 알겠네

에효 거기서도 가격을 깎다니 참 형편없는 게 아닌가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백화점 와서 30만 원짜리 옷을 맘껏 한번 쇼핑해 보리라


그리 다짐했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25살부터 난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백화점 옷은 쉽사리 사 지지 않았다. 밀리오레 옷만 입던 관성 때문인지 그 돈 주고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사실 그리 이쁜지도 모르겠었다.



그래도 나는 어딜 가서 예전의 엄마처럼 가격을 깎아본 적 없었다. 그러기 싫었고 그게 내 나름의 자존심이고 당당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랑 같이 아동복 매장에 들어가 보면

내 눈에 이쁜 옷은 항상 비싸다. 그리고 망설인다.


가을 한철, 길어야 내년 봄까진데 이 돈 주고 사는 게 맞나

인터넷에 비슷한 거 찾아보면 훨씬 쌀텐데 좀 참을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나 보자 하며 이거 할인되나요? 물어보면 예전처럼 역시 할인은 안된다.

그러고 나면 민망해져서 할인코너를 찾아 30% 정도 할인된 옷을 대강 아이에게 어떠냐 물어보고 사버린다.




아 우리 엄마랑 얼마나 똑같은가




그날 저녁 남편한테

나 예전에 엄마가 내 옷 사면서 깎는 게 그렇게 싫고 부끄러웠다? 근데 내가 오늘 그런 거 있지? 하며

민망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남편은 너 아줌마 다됐네 하며 내 뻔뻔함에 웃었는데

그 말에 우리 엄마도 그랬던 거구나 싶어졌다.



아줌마는 아줌마라서 흥정하는 게 아니구나

애들 옷은 한번 입는 건데 사기 아깝잖아 그러다 보니 용기 내서 말해본 거지

엄마 눈에 이쁜 옷 입히기 위해서 한번 자존심 꺾이는 거지

나도 엄마가 되니 얼굴에 철판깔고 뻔뻔하게 되는구나

날 덜 사랑해서 그런것도 아니였구나

그게 엄마의 이유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