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배낭여행 때 들린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한 달 여행의 말미,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꼭 보고 싶었다.
렘브란트가 명성을 높이며 잘 나갈 때가 아닌, 아내는 죽고 파산한 후에 자기 모습을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했다.
작년 가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전시회에서 그때의 감동을 되살릴 수 있었다.
올해 편입한 세종 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 봄학기 종강 수업에서 교수님이 말했다.
기회가 되면 그림을 보라고, 글이 담아내지 못하는 감정을 화가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새벽에 바다가 내는 소리, 고요한 숲 속에서 느끼는 자유, 아침에 내려 마시는 커피 향,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먹는 달콤한 디저트, 첫사랑의 설렘, 이별의 고통 이런 것들을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예전 직장 동료는 어릴 때 발레를 배웠다고 했다. 발레를 배우면서 몸 곳곳의 감각을 깨우고, 자세하고섬세하게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내게는 글쓰기가 ‘발레’인 셈이었다. 글을 쓰면 내 안에 감췄던 감정, 억눌린 의식이 표출된다. 글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지난 학기 ‘그림책’ 강의를 들으면서, 내 동화에 어울리는 삽화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담당교수님도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했다. 예술의 재료는 자유와 진심이라는 북돋음을 잊지 않고.
중학교 때인가, 미술 숙제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과제는 화병과 꽃을 수채 물감으로 그리는 거였다. 학원선생님은 노란색 꽃 위에 초록색, 파란색, 보라색 물감을 풀어 덧칠하는 것이었다. ‘아…. 이 색깔이 아닌데.’ 어렵사리 비슷한 색깔로 색칠해 놓으면, 전혀 다르게 표현하는 선생님의 붓놀림을 보면서 속상하기도 했다. 완성된 그림을 보며, 빛에 반사된 꽃인지 여러 번 살펴봤다. 여러 색깔이 겹쳐 있는 신기한 물감의 세계로 점점 더 빠져들어 갔다.
올가을 수채화 켈리그라피 강좌를 신청했다. 첫 번째 수강 신청 마감 후 누군가 취소해서 덤처럼 얻은 자리였다. 그림과는 담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기회가 올까 싶어 무리한 일정임에도 진행했다.
첫 수업 후 수채화 물감과 붓 그리고 팔레트를 주문했다. 그리고 오늘 붓과 물감이 도착했다.
중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 만나는 수채 물감. 렘브란트의 유화처럼 모든 걸 다 잃어버릴지라도 자기 모습을 그려낸 존엄함을 떠올려본다.
이 과정은 시에서 지원하고, 평생학습원이라는 공공시설에서 이루어진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기댄 3시간 수업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 전 어깨 통증 치료받을 때 평소 내 자세를 어찌나 원망했던지.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오프라인 강좌. 친절한 강사 선생님,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진 수강생들을 만나니, 기분이 새롭다. 깊어진 가을 말보다 그림 혹은 예쁜 글씨체로 내가 본 세계를 표현해 볼 생각이다. 생각이 그림으로 태어날 가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