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네 번째 추석이다. 결혼 후 가장 크게 바뀐 게 있다면 명절 풍경이다. 결혼 전 명절에는 가족과 식사 후, 친구들과 여기저기 쏘다녔었다. 텅 빈 도심을 반가워하며.
명절이 가까워오자, 귀성길 준비를 한다. 시댁은 경상남도 진주. 도시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결혼 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결혼 후 첫 명절, 시댁 가족들과 남해 독일마을 방문에, 삼천포 바닷가 해상케이블도 타고 신기했다. 내게 시댁 가족들이 생긴 것도 변화였다.
남편과 늦은 나이에 만난 며느리를 귀하게 여겨주시는 시어머니, 시댁 가족들은 따스한 분들이다. 시어머니는 지금도 옥상에 작은 텃밭을 일구고, 어항의 열대어들을 보살피며, 예쁜 꽃을 보면 눈을 못 떼신다. 평생 동식물들을 친구로 곁에 두며 사셨다.
말수가 적지만, 웃는 상으로 맞아주는 시아주버님, 시원시원한 성격에 20년 차 살림의 고수 형님. 아이들을 좋아하는 내게 조카들 두 명이 새로 생겼다. 그런데도 경상도의 서열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문화는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독일 유학 경험과 외국인과 주로 일했던 회사생활 덕분일지도. 종교가 달라 제사를 치르는 것도 처음엔 어려운 숙제였다.
어머니 좋아하신 미니 콩고 선물^^
결혼 후 네 해, 남편, 시댁과 조율하는 시간을 거치면서 예전보다 시댁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시댁 방문 전날까지, 약속한 일들을 해내느라, 시댁 방문에 대한 부담감은 희미해졌다.
올해 일흔여섯 인 어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밑반찬, 갈비, 생선, 경상도 특선 바다 대구탕이 나온 추석 상을 맛있게 먹고, 설거지했다. 시댁 가족과 명절을 쇠고 나니, 예정된 2박 3일의 마지막 밤이 다가왔다.
근처 카페에 축복이를 데리고 가서, 어머니와 수플레 디저트를 맛있게 먹었다.
“축복이도 산책시킬 겸, 체육공원에 갈까?” 남편이 말했다. 체육공원? 늘 그렇듯 형용사와 부사를 뺀 문장을 구사하는 남편. 별말 없이 따라나섰다. 기대하지 않은 밤 산책. 무척 습하고 더웠던 것은 오후랑 다르지 않았는데. 하늘에 둥실 뜬 보름달을 발견한 것과 동시에 어디선가 봤던 나무가 양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숲이었다. 결혼 전 친정 부모님과 담양으로 여행 간 적이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지난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었던. 메타세쿼이아 나뭇잎은 집에서 키우는 라벤더 잎 모양처럼 섬세하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그에 반해 나무 몸통은 튼실하고 꼿꼿하게 위로 솟구쳐 있다.
“이 공원을 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재활 운동한다고 걸었었다.” 시아버지가 쓰러지신 후 재활할 때,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와 다시 일어날 희망을 품고 걸었던 길이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를 일으키시려고, 운전까지 배워 시아버지을 태우고 공원에 와서 재활했었다고 한다. 난 한 번도 뵙지 못한 시아버지을 떠올렸다. 시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걸으셨을까.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은 담양에서처럼 꼿꼿하고 당당하게 보름달이 뜬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늘어서 있었다. 세월을 헤쳐온 시부모님의 굳센 의지처럼.
달빛 아래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걸으며, 추억 속 살아계신 시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걷고 있는 남편의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담양에서 나를 반겨준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진주에서 새로운 가족들의 마음속으로 나를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