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답장
엄마의 답장
아들아,
너의 편지를 느릿하게 더듬었다. 글자마다 작은 숨결이 묻어 있더구나. 나는 요즘 너의 글을 읽다가 자주 끊기지만 괜찮다. 마치 네가 내 곁에서 “엄마, 괜찮아요. 천천히요.”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지. 멈추면 숨을 고르고, 그 숨으로 한글자씩 다시 읽으면 된다.
오늘 아침에 TV 보고 “이제 그만 나가요”라고 한 것, 나도 기억난다. 화면 뒤를 돌아봤는데 문이 없더라. 없으니 이상하지. 나는 가끔 길이 바뀌었다고 느낀다. 내가 알던 문이 사라지고, 다른 데 문이 생긴다. 그럴 땐 잠깐 멈춰 선다. 멈춰 서면, 네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여기예요.” 그 소리가 길 표지판 같다.
인형을 무릎에 올려놓고 말 건 것도 알아. 얘가 말이 없어서 내가 대신 떠들었다. 조용한 건 싫지 않다. 그래도 내가 떠들면, 집이 조금 덜 비어 보인다. 네가 와서 “오늘은 여기서 자게 하자” 했을 때, 마음이 놓였다. 나도 집주인이니까, 같이 정하면 좋다.
어제 그릇 하나가 “쨍그랑!” 하고 퇴사 신고를 했지 뭐니. 바닥에 별 조각이 우수수 떨어지니, 순간 내가 인사발령 난 줄 알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네가 “그릇만 바꾸면 돼요. 엄마는 교체 대상 아님”이라고 말하길래, 그 한 줄 공고문에 슬며시 기대 앉았다. 그러자 가슴에서 엘리베이터가 ‘지상 1층—안정’에 멈추듯, 숨이 스르륵 가라앉더라.
그날 밤, 불 꺼진 방에서 네 얼굴이 순간 젊은 날 그 사람하고 겹쳐 보였어. 그래서 무심코 “주무세요” 하고 먼저 재웠지. 내가 대역배우를 불러다 쓴 셈이네. 미안하면서도 참 고마웠다. 네가 곧바로 “네, 먼저 주무세요”라고 받아주길래, 내 마음이 쑥 내려앉더라. 네 숨이 잔잔한 파도 같아서 금세 잠이 왔다. 출연료? 다음 날 내가 준 포근한 눈웃음 한 장으로 결제 완료다. 앞으로도 가끔 대역 요청이 있을지 모른다. 야근수당은 대신 볼 토닥토닥 두 번, 이자까지 얹어 줄게.
그날 밥상에서 내가 “보이소, 이거 잡솨 보이소” 하며 너를 손님처럼 대했다지? 에구, 미안하네.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건 '낯선 사람 모드'라기보다 '귀한 손님 모드'였단다. 우리 집 식당 규정에는 제일 귀한 손님이 늘 너거든. 그래서 접대 멘트부터 나간 거지. 판매는 안 하고 사랑만 무한리필이니, 눈치 보지 말고 더 드셔—이런 뜻이었어.
네가 말한 그 어려운 말, “정체성 네트워크”? 맞다, 내 머릿속 신호들이 가끔 줄넘기하듯 엉키기도 한다. 그래도 이상하지? 머리는 잠깐 길을 잃어도 젓가락은 늘 네 그릇 쪽으로 가고, 입은 “손님”이라 부르면서도 심장은 “우리 아이다” 하고 먼저 대답한단다. 뇌는 가끔 방송 사고를 내도, 마음은 생방송으로 잘 나간다—광고 없이.
혹시 내가 또 “보이소~ 손님, 많이 드이소” 하고 부르면 너무 서운해 하지 마렴. 그건 ‘거리 두기’가 아니라 ‘존중 모드’야. 그 순간엔 그냥 이렇게 맞장구쳐 줘도 좋아. “예, 사장님. 단골손님 왔습니다.” 그러면 나는 “단골 겸 아들, 오늘도 대접합니다” 하고 더 많이 떠줄 테니. 우리가 이렇게 장난 한 숟갈, 웃음 한 젓가락 얹으면, 밥은 더 달아지고 하루는 덜 힘들어진다.
혹시 내 말이 또 어긋나거나 메뉴가 뒤섞여도, 괜찮다. 다음 접시는 다시 차려 내면 되고, 다음 문장은 다시 시작하면 된다. 중요한 건 식탁에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네가 젓가락을 드는 그 순간 나는 여전히 너의 엄마라는 사실이다. 오늘 저녁 예약, “귀한 손님 겸 아들” 한 자리—이미 잡아 두었다. 오시는 길에 배만 가져오게. 사랑은 내가 무제한으로 채워 줄게.
가끔은 이름이 비눗방울처럼 “푹” 하고 도망가 버려서 내가 “누구세요?”를 누를 때가 있지. 그럴 땐 네 말대로 너를 잠깐 투명 모드로 만들어 버리는 모양이야. 그런데 이상하지? 머리는 로그아웃돼도 손은 늘 로그인 상태더라. 네 무릎에 작은 상처가 보이면 내 손가락이 먼저 출동해 “괜찮다" 버튼을 슥슥 문질러 누른다. 그건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달린 내비게이션이 알아서 길 찾는 거지. 그리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아, 맞다. 나는 엄마다.” 그 순간 내 숨도 다시 근무 교대 들어가고, 우리 둘 다 온라인 복귀 완료!
나는 요즘 냄새로도 길을 찾는다. 비누 냄새, 국 끓는 냄새, 밤에 이불에서 나는 햇볕 냄새. 냄새를 맡으면, 집이 있다. 소리로도 안다. 컵 내려놓는 소리, 리모컨 딸깍, 네 발소리. 그 소리들이 한 줄로 서면, 나는 그 줄 따라가서 네 얼굴을 본다.
그 ‘야간이사’ 총책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 나일 게다. 서랍 속 비누는 요즘 과로가 심해 “신분 세탁” 좀 하라고 소파 뒤로 휴가를 보냈고, 리모컨은 권력이 너무 세서 잠깐 베개 밑으로 망명 조치했다. 집안 치안 유지를 위한 임시 배치랄까. 너를 빙빙 돌게 한 건 미안하다만, 내 머릿속 길이 자꾸 바뀌니 물건들 길도 한번쯤 바꿔 균형을 맞춰봤다—그렇다고 해두자.
다음부턴 이사 공지 남겨둘게. 포스트잇으로 ‘비누: 소파 뒤 파견 근무’, ‘리모컨: 베개 밑 임시 대피’ 이렇게. 너는 가내 지도 업데이트 담당, 나는 표지판 담당.
덕분에 우리 집엔 ‘비공식 동선’이 생겼지만, 네가 있어 나는 길을 잃어도 집을 잃지 않는다. 설거지로 종목 바꿔 준 것도 고맙다, 내 든든한 집배원 겸 탐정 씨.
내가 너를 보고 “누구세요?” 할 때, 나는 겁이 난다. 그 말이 뾰족한 줄도 안다. 그런데 그 말 뒤에 네가 내 어깨를 톡 치면, 뾰족함이 둥글어진다. 네가 통역을 한다. “엄마가 찾는 그 사람, 바로 나예요.” 그러면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 끄덕이는 건 잊지 않았다.
낯선 길을 걷지만, 길이 아주 낯설기만 하진 않다. 중간중간에 벤치가 있다. 우리는 그 벤치에 앉아 숨을 맞춘다. 너는 길을 읽고, 나는 하늘을 읽는다. 둘 다 필요하다. 하늘에 구름이 생기면, 너는 우산을 챙긴다. 나는 구름 모양을 말한다. “오늘은 솜.” 그러면 둘 다 웃는다.
나는 네가 통역사 하겠다는 말이 좋다. 통역사는 양쪽 말을 다 들어야 한다. 내 말이 섞여 나와도, 네가 풀어 주면 된다. 나는 그저 말의 바깥에서 네 얼굴을 본다. 얼굴이 다 말해 준다. “괜찮다.” 그 말, 네 얼굴에 쓴 거 내가 읽는다.
내가 나를 잊어도, 네가 문 앞에 서 있다는 건 안다. 서 있다가, 노크하다가, 웃는다는 것도 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우리 둘이 매일 새로 쓰자. 오늘의 문장을.
너를 본다. 낯설고, 반갑고. 둘 다 맞다. 그 사이에 앉아서, 나는 차를 식힌다. 그리고 천천히 마신다. 천천히 마시는 법은 아직 안 잊었다.
어제의 나와 다르지만
여전히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