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아들의 편지
엄마,
방금 전, 베란다 문턱에 작은 키를 올려놓고 발뒤꿈치를 들고 서 있던 엄마를 봤어요. 창틀에 손을 얹은 채, 마치 먼 데서 누군가 올 것처럼 한참을 밖을 바라보시더군요. 그 장면이 오늘따라 유달리 낯설었습니다. 분명 엄마인데, 어쩐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엄마를 닮은 다른 사람’ 앞에 선 느낌—말로 하긴 어렵지만, 오늘 저는 그 자리에서 오래 서 있었습니다.
요즘 엄마는 TV 화면을 가리키며 화면 속 인물에게 “이제 그만 나가요”라고 말씀하곤 하시죠. 화면 뒤쪽을 빙 둘러보시다가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시고는 “참 이상하네” 하고 중얼거리실 때, 제 가슴이 잠깐 내려앉습니다. 엄마의 세계에서는 TV 화면의 인물이 방 안에 들어온 손님으로 여겨질 수도 있구나, 그 세계의 문과 문턱이 제가 아는 자리와는 다르구나—그렇게 느꼈지요.
한 번은 인형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야가 오늘 집에 안 간다 카네”라고 투덜거리셨죠. 저는 그때 당황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엄마한테는 그 인형이 그냥 인형이 아니구나. 엄마의 뇌가 예전처럼 경계를 또렷이 나누지 못하면서, 사물이 살아 움직이는 자리로 슬쩍 옮겨앉았구나. 낯설음은 그 자리에서 태어나나 봅니다.
뇌는 들어오는 정보를 그대로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먼저 짐작하고 틀리면 고쳐 보는 공장 같다고 하죠. 다시 말해 뇌가 현실을 ‘예측’하고 ‘수정’하면서 세계를 만든다고요. 그래서 엄마의 짐작이 빗나가 보여도, 저는 그걸 매번 정면으로 마주해 고치려 들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위험하지 않도록 울타리만 둘러 줍니다.
TV 화면의 인물이 사람이 우리 집에 들어왔다고 믿으시면 “지금은 문이 닫혔대요, 내일 다시 오라고 전할게요”라고 말할거구요. 무릎 위 인형을 진짜 아이로 여기시면 “오늘은 여기서 재우고, 내일 아침 데려다 줄게요”라고 약속합니다.
엄마가 믿는 세계를 통째로 부정하기보다, 그 세계가 우리 일상에 상처를 내지 않도록 방향만 살짝 바꿔 주는 일—그게 제가 요즘 배우는 방법입니다.
제가 제일 흔들릴 때는, 엄마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누구세요?” 하고 물을 때예요. 그 순간 저는 투명 모드로 바뀐 사람처럼, 존재가 쓱 로그아웃된 느낌이죠. 하지만 같은 날 밤, 제 무릎 옆 자잘한 상처를 엄마가 먼저 발견하더니, 아무 말없이 손끝으로 둥글둥글 문질러 주셨습니다—마치 “괜찮다“ 버튼을 눌러 주듯이요. 그 장면을 보고 알았어요. 이름은 잠깐 비워져도, 제 쪽으로 쏠리는 마음의 중력은 여전히 작동한다는 걸요. 그제야 제 호흡도 다시 정상 박자로 돌아왔어요.
엄마, 저는 요즘 엄마를 두 겹으로 봅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내 엄마' 어느 쪽으로만 보아도 마음이 틀어져요. 돌봄 대상으로만 대하면 죄책감이 올라오고, 엄마로만 보면 하루가 너무 무겁습니다. 그래서 둘 사이의 얇은 길을 찾으려 합니다. 도와드리면서도 존댓말을 섞고, 실수를 바로잡으면서도 농담을 얹고, 위험을 막으면서도 체면을 살려 드리는—그렇게 두 겹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저는 자주 서툽니다. 그래도 다시 배웁니다. 엄마의 새로운 문법을.
요 며칠 사이 일 몇 가지를 적어 볼게요. 불을 끄고 나란히 누웠는데 엄마가 제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주무세요” 하셨습니다. 공지도 없던 캐스팅 변경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아버지 역’에 발탁됐지요. 잠깐 당황했어도, 마음 끝이 차갑진 않았습니다. 오래 비워 둔 자리에 잠깐 이불을 펴 준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아빠 대역으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대사는 단 한 줄, “네, 먼저 주무세요.” 그러자 엄마의 숨이 잔물결처럼 고르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날 출연료는 엄마의 조용한 미소 한 컷. 영수증은 제 가슴에 잘 접어 두었어요.
식탁에 앉으면 엄마는 가끔 장터 상인 모드로 바뀌어 “보이소, 이거 잡솨 보이소!” 하시며 저를 생전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하시죠.
그럴 때 저는 “예, 단골손님입니다—어제도 왔어요”라고 맞장구칩니다.
뇌과학 책에서는 이런 순간을 ‘정체성 네트워크가 잠깐 흔들린 상태’라 부르겠지만, 제게는 그저 방식이 달라진 애정 표현입니다. 부르는 호칭은 낯설어도, 건네는 접시마다 익숙한 정이 스며 있으니까요.
어느 날은 집안 물건들이 또 야간이사를 했습니다. 서랍 속 비누는 소파 뒤에서 신분 세탁을 하고 리모컨은 베개 밑으로 망명. 저는 한참 집 안을 빙빙 돌다가 수색을 접고 설거지로 종목을 바꿨습니다.
결론: 우리 집에는 비공식 동선이 생겼습니다. 그럼 방법은 하나, 가내 지도를 업데이트하는 것.
엄마, 낯섦은 두렵지만, 저는 거기서 엄마를 잃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찾는 방법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예전처럼 말로만 찾지 않고, 작은 신호로 찾습니다. 숟가락을 잡을 때의 힘, 웃을 때 눈꼬리의 각도, 문 소리에 돌아보는 속도. 그 신호들을 모아 저는 우리만의 작은 '사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모르면 물어보고, 틀리면 지우고, 다음 날엔 또 고쳐 쓰는 사전. 오늘의 저는 그 사전을 들고 엄마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이 편지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하다, 한 가지 마음만 적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어제의 엄마'를 찾지 않겠습니다. 대신 '오늘의 엄마'의 문법을 배우겠습니다. 엄마가 바꾼 단어와 새로운 억양을 따라 읽고, 그 발음으로 대답해 보겠습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사랑 같아서요. 엄마가 낯설어져도, 저는 엄마의 통역사가 되겠습니다. 끝까지.